한영대 BYC 전 회장. 사진/BYC
[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속옷 외길을 걸어온
BYC(001460) 창업주 한영대 회장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한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나 북면 소재 4년제 소학교와 정읍에 있는 6년제 정읍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회장은 오직 내의 산업에 헌신해 국민 보건과 의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와 신념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6.25전쟁은 사업의 기반을 잘 다져 나가던 한 회장에게 큰 위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전쟁이 끝난 후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세웠다.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보관했으며 전북 경제·상권의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전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이후 한 회장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으며 대·중·소로 구별했던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BYC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었다. 이는 곧 기업의 경영 방침이 됐으며 76년동안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한 회장은 내의 산업을 선도해왔다.
과거 미쓰비시 상사가 국내 시장에서 은밀히 샘플을 수거, 검토 후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으로 수출을 제안했지만 한 회장이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1985년, 한 회장은 주식회사 백양(現 BYC)의 간부 회의에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 회장은 고심 끝에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해 백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길을 선택했고, 오늘날의 ‘BYC’가 탄생했다.
국내 및 해외 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해 나갔다. 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꾸준히 상승한 인기와 인지도에 한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