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국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은 공동으로 '에너지 태스크포스(TF)를 발족, 대체 공급원 마련에 시동을 걸었다. 다만, 각국이 대체재를 찾는 동안 공급 부족으로 인해 되레 화석연료의 의존도가 되레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따르면 카타르와 장기 에너지 협정을 체결한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카타르와 장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협상을 하고 있다. 앞서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기후장관은 지난 20일 카타르 도하를 방문해 셰이크 타미 빈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왕(Emir)과 장기적으로 가스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
세계 2위 가스 수출국인 카타르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LNG를 수출했다. 카타르는 오랫동안 유럽 시장 진출을 모색했지만, 유럽은 지리상 가까워 기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이 가능한 러시아를 선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이 러시아 수입을 대체할 공급원을 찾으면서 카타르가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유럽은 카타르 외에도 앙골라, 알제리, 리비아, 미국의 가스 생산 업체와 가스 구매를 논의 중이다.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요구했던 러시아는 유럽이 '연료 배급제'를 검토하고 에너지 공급처 다양화에 나서자 한발 양보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유럽의 다음 달 결제는 유로화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일주일 전인 지난 23일 러시아산 천연가스 구매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선언하며 유로와 달러 등 외화 결제 시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포했는데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러시아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데는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면서 급격히 올라간 미국산 LNG의 점유율 때문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전문매체인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유럽 천연가스 시장에서 미국산 LNG의 점유비중은 지난해 말 7%에서 지난달 32%까지 올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지난 25일 에너지 안보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미국은 올해 최소 150억㎥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유럽에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다. 올해 미국산 LNG는 러시아 공급을 대체하기 위해 수출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할 공급처를 찾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의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천연가스 수요량의 약 5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에 나섰다.
재생에너지 전환에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고,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면서 기존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기존의 탈석탄·석유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원전이 탄소 중립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자국 전력 수요 가운데 원자력 비중을 최소 25%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슈베트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활동가들이 '석유 아닌 평화'라고 쓰인 피켓과 '평화의 상징' 조형물을 들고 PCK 정유공장으로 통하는 철로를 막은 채 시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