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년이 흘렀다. 수많은 인명·재산 피해를 낸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종전의 기미는커녕 오히려 확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우크라이나와 거래를 하는 우리 중소기업도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예고도 없이 날벼락을 맞은 피해 중소기업은 전쟁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피해 기업이 처한 구체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 요긴하게 필요한 지원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지원받을 만한 게 없더라고요. 특례보증 해준다고 해도 은행 금리가 너무 높은 데다 이미 빚이 많기 때문에 부담이 돼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수출바우처를 추가로 받고 싶었지만 기존 수출바우처가 있다 보니 추가로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어요."
"매일 현지 신문을 읽습니다. 전쟁이 끝나야 불확실성이 해소될 텐데 당장 내일도 예측할 수 없다보니 중장기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재고를 안고갈 수 없으니 기존 사업에서 방향을 틀어서 재고 부담 없는 단순 유통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지난 3월18일 서울 금천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중소기업 분야 비상대응 티에프(TF)’ 2차 회의와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중소기업 분야 비상대응 티에프(TF)' 2차 회의와 간담회에 참석했던 피해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지난 24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반년 넘게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피해 중소기업들이 저마다 대안을 강구 중인데, 자금력과 대체 거래선 발굴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신규 거래처를 재빨리 파악해 대안을 마련한 기업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은 피해가 덜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반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피해가 컸고 대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수출 비중이 100%인 마이크로디지털의 한중수 대표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알려왔다. 한 대표는 "수출을 하고 있고 운송도 불편할 뿐이지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만 한 대표의 경우는 기존 사업의 품목을 일부 변경하면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기존 주력 상품의 경우 현지 수요가 현격히 줄어든 까닭이다. 한 대표는 "품목을 줄이면서 매출은 지난해 대비 50% 정도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디지털은 현재 1~2년 정도 버틸 자금이 남아있어 정부 지원은 따로 받지 않았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자금이 크게 들어갈 곳이 없기도 했다. 마이크로디지털은 기존 사업이던 CCTV 카메라 사업을 재고 부담의 이유로 잠시 중단하고 화장품으로 유통 품목을 바꿨다. 이 가운데 불행 중 다행으로, 러시아와의 거래를 중단한 유럽 업체들이 기저귀, 유모차 등 한국 육아 용품을 찾는 경우가 생겨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난 2009년에 설립된 한 특수필름제조 업체의 경우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신속한 거래처 전환으로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당시 금융제재로 인한 대금결제 지연과 원자재 수급 물류에 차질이 빚어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피해를 신고했다. 중진공은 지난 4월 이 기업에 긴급경영안정자금으로 5억원을 지원했다. 업체는 지원받은 자금을 해외 원자재 매입비와 직원 인건비 등으로 활용해 수출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 그 결과 거래를 70% 수준으로 회복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전 이 업체의 수출 국가 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비중은 절반에 달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수출길이 막히자 이 업체는 미국 등으로 거래처를 신속하게 전환했다. 현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신 신규 거래처 위주로 수출 거래를 주로 하고 있다. 긴급자금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신규 거래처를 빠르게 확보한 덕에 이 업체는 올해 매출액이 지난해 매출액 156억원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에 화장품을 유통하는 야다의 손현우 이사는 여러 악재가 겹쳐 수출 사업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야다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은 30%인데 이 가운데 러시아 수출 의존도는 50%다. 야다는 대체 거래선을 발굴하기 위해 중국 등을 알아봤지만 사드 보복 이후 거래선이 망가져 신규 거래선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우회항로를 통해 러시아로 화장품을 수출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번에는 원부자재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화장품 용기 등 원부자재 비용이 많게는 20% 이상 상승했다. 중소기업 화장품 브랜드들의 경우 원자잿값을 반영해 가격을 인상하기가 어려워 기존 가격대로 수출하다보니 영업이익률은 더 떨어졌다고 손 이사는 설명했다. 생산단가가 올라가면서 야다의 영업이익률은 5%p 이상 하락했다. 매출은 내수로 메우고 있지만 수출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손 이사는 "전쟁이 끝나야 많은 화장품을 제대로 수출할 수가 있을 것"이라며 "주변에 러시아·우크라이나에만 90%, 100% 수출하는 업체들이 많은데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죽기 직전 상태"라고 전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