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원주지방환경청)와 문화재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를 오가며 수년간 실랑이를 벌이던 설악(오색) 케이블카, 그리고 서해 영공을 수호하고 낙도(흑산도) 주민들의 발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흑산공항 건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또 한강하구의 민감 생태계를 우회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불확실한 보완조건들을 붙여 그대로 관통하는 문산~개성 고속도로도 그렇다. 그러나 흑산공항의 경우 후보지를 국립공원에서 빼면서 수백리 떨어진 바다 건너 다른 섬(비금도)에, 그것도 공유수면에 대체습지를 마련하는 방안은 과학도 정의도 아니다.
우리 환경영향평가제가 실효성이 문제되어 개발주의자들로부터 "시간만 끌고 비용만 늘린다"는 시비를 받더니 급기야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기계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그동안 개선요구가 컸던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절차를 줄이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규제개혁이 추진된다. 같은 개혁론은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예비심사를 단계적으로 도입하여 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한편, 사업자와 협의기관이 공동으로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여 조사의 범위·항목을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사업자를 중요 조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이러한 동향은 달리 보면 입법당국의 자화상이다.
독일 생태계침해조정제(자연자원총량제)는 개발부지만큼의 대체지를 다른 곳에 마련하라는 뜻이지, 모두가 영향지역인 주변을 방치하고 가운데만 쏙 빼서 수백리 이격지에 대체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수백리 수천리 이격지를 용인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개발사업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하여 인근 주나 해외에 흡수원 숲을 만들도록 허용한다. 예컨대, 플로리다에 발전소를 지으면서 남미에 숲을 조성할 수도 있다. 대기는 지구를 순환하며 지구평균기온 상승억제(1.5℃ 이하)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대순환 경로를 엉뚱하게 철새들에게 요구한다. 커피믹스 봉지 하나 정도의 몸무게(12g)로 수천리를 비행하는 작은 새들에게 "여기는 공항이니 다시 바다를 건너 다른 섬으로 가라"는 식의 발상은 인류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어쩌면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철새들이 동남아에서 동북아로 비상하기 전에 무선 등으로 사전정보를 주고 흑산도 상공을 경유할 때 깃발이나 카드 섹션으로 무착륙 통과지구라고 알려줄 수도 있겠다. 레이저나 초음파를 쏘아 철새 접근을 막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누군가 "무엇이 문제랴. 사전에 인터넷에 올렸고 철새협회에도 통지하지 않았는가. 통과할 힘이 없는 철새들은 사람이 책임질 수 없으니 아예 출발하지 말고 거기에서 텃새로 눌러 살아라"고 외친다면 참으로 낯 간지러운 일이다. 이런 황당함은 철새뿐만 아니라 개구리나 맹꽁이 등 양서류나 구렁이 등 파충류 그리고 반달가슴곰 등 덩치 큰 야생 모두에게 일어난다. 비무장지대(DMZ)·민통선이북(민북) 지역 일원의 논이나 율무밭에서 먹고 쉬며 짝을 찾는 두루미들에게도 환경변화를 사전에 알리거나 타지로 이주하라고 알릴 수 없다. 맹금류의 운명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피차 손실만 입고 현실적인 기여도가 낮은 환경영향평가제는 대폭 손질하거나 아니면 퇴출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책임지는 주체가 없고 제동장치도 없는 경우는 없다. 좋은 장치는 다 빼고 모양만 냈다. 우리 환경영향평가에는 ‘평가’가 없다. 주변만 건드린다. 사업자(평가대행자)가 조사한 초안만 있다. 사업자가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거나 아니면 그들 대행하는 환경영향평가사들이 같은 사업을 평가한다. 세상에 누가 자기 사업을 “불가”라고 평가하겠는가. 만약 평가대행자가 불가를 몇 차례 기록하는 순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환경부장관의 협의(검토·동의·부동의)가 행정법상 행정처분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소송이 불가능하다. 행정소송도 원고적격과 ‘소(訴)의 이익’ 요건이 엄격하여 십중구십이 패소한다. 대안으로 유럽연합(EU)이나 미국처럼 환경영향평가 자체를 대상으로 공중의 환경소송을 허용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제를 처음 실시한 미국처럼 인허가 행정청이 직접 환경영평평가를 담당하든지, 캐나다처럼 전담 행정기관인 환경영향평가청을 만들든지, 아니면 미국·영국처럼 환경영향평가와 생태계서비스 평가를 병행해야 한다. 독일은 개발도상국가들에 후자를 열심히 전파한다.
미국의 대통령실 소속 환경질위원회(CEQ)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협의가 아닌 논평을 통하여 인허가 관할 행정청을 지도한다. 환경영향평가가 살아남으려면 “가부를 해결하지 못하고 발목만 붙잡는다”는 세간의 비판을 면해야 한다. 사업자가 평가 주체이면서 대행자에게 거짓·부실을 따지고, 환경부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아니하는 모순이 고쳐지지 아니하는 한 환경영향평가의 헛발질과 불명예는 계속될 것이다. 인류의 양심이 부끄러운 불편한 진실 앞에서 현상을 개칠하여 환경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근본을 고쳐야 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