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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공권력과 빅테크 앞에 벌거벗은 개인
입력 : 2022-10-17 오전 6:00:00
감사원은 공직자 7000여명의 기차 이용 기록들을 가져가면서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의 민간인 시절 이용 내역까지 제출받았다. 준 쪽이나 받은 쪽은 모두 불법 혐의를 면하기 어렵다. 정보사회에서는 거대한 공권력(빅 브라더)이 텔레스크린을 통하여 모든 개인들의 사생활을 꿰뚫어 보는 감시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처럼 개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엔가 노출되어 있고 그것이 어느 순간 정보나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본인이 원하지 아니하는 쪽에 넘어가 나를 얽어매거나 팔아넘기는 덫으로 사용된다.
 
감사나 수사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사관이나 수사관이 자기보다 더 자기를 잘 알고 있음을 안다. 개인의 노출은 정보통신사회의 특징이다. ID나 IP를 통하여 각종 컴퓨터접속·신청·등록·교육·학습·통신·통행·정보이용·금융거래·예약·관람·여행·투표·계약 등 대부분의 사실행위 또는 법률행위에서 개인정보는 무한 노출된다. 내가 적극적으로 어떤 행위로 나아가지 아니하더라도 거리와 골목에 즐비한 CCTV는 물샐 틈 없이 행인들을 감시한다. 덕분에 아동보호, 회계감찰, 범죄예방과 수사 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천후 전방위 감시와 개인정보의 노출은 ‘익명으로 살아갈 자유’를 해치고 사생활(프라이버시)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따지고 보면, 정보 사업자들이나 당국들이 시효가 지난 데이터나 기록들을 장기간 갈무리하고 이를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업자나 당국에 넘겨 상업화하거나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권력은 안전보장·공공복리 또는 질서유지를 위하여 개인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지만(제37조제2항 전단),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동 후단). 개인정보의 노출을 방지하는 법률이 개인정보보호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란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나,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말한다(제2조제1호). 개인정보 주체는 개인정보의 처리 정지, 정정·삭제 및 파기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4조제4호). 공직자도 개인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들을 둘러싼 왜곡된 규제와 방만한 정보관리로 말미암아 개인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늘어난다. 개인들은 컴퓨터나 온라인 상 자기기록이나 정보를 지우고 싶어도 제대로 지울 수가 없다. 정보사업자들은 모래를 뭉쳐 거대한 성을 쌓는다.
 
한국법철학회지에 발표된 논문 ‘빅테크와 양봉업자’는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군중들의 행동을 인지잉여(Cognitive Surplus)로 보고, 이것이 '법의 지원' 아래 빅테크 영업에 탄탄대로를 깔아주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법의 지원이 가져온 막대한 수익을 개발이익 환수 차원에서 공적으로 회수하는 경로를 모색한다. 여기에서 빅테크 사업자는 수많은 벌들의 도움으로 꿀을 채취하는 양봉업자와 같다.
 
인터넷 세상에서 법은 앞뒤 틀린 잣대를 들이댄다. 당국은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물 샐 틈 없이 정보열람에 규제를 가하면서도, 예컨대, 피해자가 법원을 통하여 검찰·경찰 수사기관에 기록 열람을 요청하더라도 개인정보를 이유로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수사당국은 컴퓨터를 압수하고 휴대전화를 포렌식한다. 꿀벌처럼 벌통 안에 갇힌 개인들은 모든 정보를 다 털린다. 수사관 앞에 불려간 개인은 수년 전에 통화한 내용을 기억해야 하고 또 그때 그 사람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를 기억하도록 강요당한다.
 
헌법(제17조)상 ‘사생활의 자유’란 흔히 오해하듯이 은밀한 개인생활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겉옷 아래 속옷을 공개하고 싶지 아니하듯이 개인들이 온라인으로 무엇을 열람하였고, 지인들과 뭘 통화하였으며 무슨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가 또 수첩(노트북) 안에 무엇을 적어 두었는가를 알리고 싶지 않은 자유를 뜻한다. 프라이버시는 양파와 같다. "속을 보겠다"고 껍질을 벗길 일이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일찌기 헌법 규정에도 없는 프라이버시 자유를 판례로 인정하면서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개인사를 덮어둘 자유" 또는 “나를 내버려 달라(Let me be alone)고 요구할 자유”로 묘사하였다.
 
우리네 감사나 수사 당국은 엄청난 '법의 지원' 아래 모든 전화, 이메일, 온라인 검색기록, 계좌정보를 몽땅 털어간다. 법원의 수색영장은 요구불 예금이다. 사이버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한다는 명분으로 개인들은 공권력 앞에 방패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서 있다. 온라인이나 빅테크 사업자들이 그들이 취득한 개인정보들을 보유하고 이를 빅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갈무리하고 돈을 벌면서 때로 정보당국에 개인정보를 넘기는 행위는 헌법상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행위이다.
 
개인들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방치함은 자유주의가 아니다. 개인정보 보장은 근대를 지탱한 개인주의의 성과이다. 자유를 보장하였던 역사도 일천한데 그 남용을 걱정하는 기우를 본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자율이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그 한계를 인식하는 개인들은 공권력이나 사업자들로부터 두텁게 보호받아야 한다. 공권력의 편의와 양봉업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꿀벌들을 희생시켜서는 아니 된다. 정보 당국이나 빅테크 사업자들은 꿀벌들이 인지잉여로 모은 개인정보들을 빅 데이터라는 옷을 입혀 시장이나 수사당국에 넘기지 말고 조기 폐기하여야 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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