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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사외이사 제도, 이대로 좋은가?
입력 : 2022-10-21 오전 6:00:00
최근에 사외이사와 관련해 발생한 기이한 사건 몇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어느 내의회사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정치인이 광역지자체의 평화부지사로 활동하며 이 회사가 북한의 회토류 개발사업에 참여하도록 도와줘 2000억원이 넘는 주식 평가 차익을 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정치인은 그 대가로 법인카드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사외이사 출신의 공직자가 정부 안에서 민원성 로비 창구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사외이사를 맡았던 회사의 인위적 주가 부양을 위해 고위 공직자가 대북 사업까지 이용한 것은 매우 특이하다. 북한과 자본시장을 연결해 수천억원의 이익을 보겠다는 통큰 그림에 사외이사 인맥이 중심 고리로 동원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 하나는 연예인과 열애 중인 재력가가 소유한 코스피 상장사에 그 연예인의 친언니가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는 보도다. 사외이사 자리가 애인 언니에 대한 사적 선물로 전락한 웃픈 소식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한다는 취지의 사외이사 제도가 로비의 연고나 선심성 선물감으로 변질한 사례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과연 대다수 사외이사가 투자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 사외이사 제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 도입됐다.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기업주의 전횡과 기업경영의 폐쇄성이 지적됐고, 이를 개선하고자 대주주와 관련이 없는 전문가들을 이사회에 참가시키는 사외이사를 두게 됐다. 법률상 상근이사와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사외이사는 객관적 입장에서 경영진의 직무집행을 감독하며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와 같이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여 매년 주총 시즌이 되면 주요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누가 선임되었는가가 화제를 모으며 언론에 보도된다. 
 
기업들은 법률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사외이사 제도를 운용하지만, 내실보다는 형식에 치중한다. 많은 기업이 사외이사를 장식품으로 간주해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명망가를 모시어 화려한 사외이사진을 대외적으로 과시한다. 정부 부처나 기관과의 연결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전직 관료나 정치인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예도 흔하다. 금융업이나 유통업처럼 정책과 규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업종일수록 고위 관료가 사외이사직을 많이 맡고 있다.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도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지만, 그 역할은 제한된다. 우리 기업은 이 정도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하는 구색용에 불과하다. 여론에 의견에 영향을 주고자 사외이사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교수나 시민단체 활동가 중에서 반기업적 주장을 펼치면 사외이사 제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노동 분야에서 강성발언하던 교수가 제조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더니 친기업으로 변신했다는 소문도 돈다. 
 
사외이사를 계륵처럼 취급하는 기업도 있다. 국내 자산규모가 늘어나 어쩔 수 없이 사외이사를 둬야 하는 어느 독일계 자동차 회사는 사외이사 보수가 아까워 사외이사에게 자기네 자동차를 구입하도록 하고 월 보수의 절반을 할부금에서 제하여 준다. 그런데, 이 회사의 차가 몇 년 전 주행 중 화재가 난 사건이 있어 사외이사직을 거절하는 후보도 있다고 한다. 
 
사외이사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사명감을 갖고 사외이사 역할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외이사직은 일종의 트로피와 같다. 사외이사직을 맡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진다. 교수도 일류급이면 사외이사 한두 개 정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외이사직에 따르는 보상도 크다. 사외이사에게는 임원급의 권한과 대우와 부여된다. 무엇보다 부업치고는 보수가 짭짤하다. 가끔 이사회 참석하는 것에 비해 과한 급여를 받는다. 물론, 분식회계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이 크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일은 적고 보상은 크니 사외이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줄을 잇는다. 대기업은 사외이사 자리 청탁으로 골머리 앓는다고 한다. 
 
여기서 대주주와 사외이사의 이해가 겹치는 접점이 생기며 유착과 야합이 싹튼다.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회사의 대주주나 경영진이 선임한다. 그런 대주주를 곧이곧대로 감시하며 사외이사직을 수행하겠다고 하면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지 고양이가 선택하는 현행 제도에서 사외이사가 본연의 사명을 담당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하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해 사외이사와 경영진과 같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까지는 참을 만하다. 사외이사직이 대주주의 선물감으로 전락한 것도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사회 전반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는 새로운 정경유착의 고리로 악용되는 사외이사 제도를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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