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등과 같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설악산이 국내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된 지 40년을 맞이하였다. 1971년부터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MAB) 프로그램에 따라 선정·관리되는 생물권보전지역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베푸는 자연을 지속가능하게 보전·이용하려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민통선 일원 등 모두 9개가 선정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2022년부터 11월3일을 ‘세계생물권의 날’로 기념한다.
생물권의 핵심구역은 경관, 생태계, 생물종 및 유전적 다양성의 보존에 기여하는 엄격보호구역이다. 완충구역은 핵심구역을 둘러싸거나 인접하는 곳으로서 과학연구, 모니터링, 훈련 및 교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 건전한 생태적 조치들과 양립할 수 있는 활동들에 이용된다. 협력구역은 공동체들이 사회문화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및 인류 활동을 영위하는 곳이다. 환경부 훈령으로 운영되는 MAB한국위원회가 생물권의 신청·등재 및 관리를 총괄한다.
생물권에는 국립생태원·생물자원관·국립공원공단·자연환경국민신탁 등 전문기관들과 민간단체·연구소 등의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우수한 생태계와 다양한 생물종 및 탁월한 경관이 다수 분포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따라 이러한 자연자원을 잘 보전하면서 현명하게 이용하려면 각 생물권의 유지·발전에 기여하는 핵심 이해관계자들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이익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현행 법제상 실행 가능한 경제적 유인으로서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른 생태·경관보전지역의 주민지원(제20조)과 생태·경관보전지역의 우선이용(제21조), 야생생물법(제32조)에 따른 멸종위기종관리계약, 자연환경보전법(제50조)에 따른 생태계보전부담금의 반환·지원 그리고 생물다양성법(제16조)에 따른 생태계서비스지불제계약 등이 있다. 농업농촌공익직불법에 따른 공익직불제 그리고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어업으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 ‘농어업 자원 보전 및 환경 개선’ 및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도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생물권 핵심구역은 당초부터 관련 법령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는 보호구역들 중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법률적 구성’이 새로이 필요하지 아니하다. 현행 법제는 생태계 우수경로들을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른 생태경관보전지역 또는 습지보전법에 따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수권한다. 야생 서식지들도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야생동물특별보호구역 내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완충구역과 협력구역은 보전목적과 자원관리를 위한 유연한 규범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현행 법제가 특별히 취약한 대목이다.
생물권이 안고 있는 한계 중의 하나는 외부 토지 소유자(부재지주)들의 개발이익과 현지 경작자나 주민들의 보전이익이 갈라진다는 사실이다. 설악산이나 제주도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국립공원 등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난개발이 제한되지만 DMZ 남측 민통선 이북지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민통선의 북상함에 따라 난개발이 뒤따르는데 지자체 책임자들은 대토지 소유자들이나 부재지주들의 입장을 존중하여 생물권에 생태경관보전지역 내지 시·도생태경관보전지역의 지정을 주저하거나 거부한다.
생물권에서는 공간 획정이 자기 완결적이 아닐 수 있고 여건에 따라 부분 변경되거나 환지 등 이익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관계 행정기관들은 협치를 기반으로 생물권의 공간 관리를 부단히 지도·조력할 책무를 진다. 환경부장관이나 관계 행정기관들은 전문기관들의 실태조사 결과를 참고하여 새로운 공간 범주를 창설하지 아니하고도 행정협약·사회협약·보전협약 등을 기반으로 생물권의 제도적 흠결을 보정하면서 그 환경·생태 공간을 보존·보전·관리·이용지역으로 구분하여 관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물권에서는 명령통제형의 행정규제 체계만으로는 이해관계자들의 역할분담과 이행책임 그리고 성과관리를 달성하기 어렵다. 생물권에서 관계기관간 역할과 이행책임을 분담하는 행정협약(MOU)의 체결과 이행을 권한다.
생물권 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그리고 생물다양성협약이 추진하는 지속가능관리지역(OECM) 등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강행법 체계와 간헐적 예산지원만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국토·환경·농림·해양 법제는 종래 생물권(완충구역과 협력구역)에 대하여 협치(거버넌스)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구비하지 아니하였다. 특히 생물다양성법에 따른 생태계서비스지불제(PES)는 종래 생물다양성관리계약에서 전환되어 그 범주가 확대되었음에도 종전 예산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어 법률상 자격을 갖춘 민간기구의 참여가 지체된다. 강행법규에서 기속력이 있는 자발적 협약으로 넘어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