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지난 2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 앞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시무식.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노동자 민중의 거침없는 반격을 시작합시다"며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은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과제로 반드시 쟁취해야 합니다"고 외쳤습니다. '더 크고 더 단단한 연대'로 윤석열 정권과 맞선다는 목표를 강조했습니다.
이날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이 말한 시무식과 신년사를 보면 민주노총의 어제와 오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태일과 투쟁'. 민주노총 시무식을 포함해 주요 행사들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전태일 열사입니다.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라는 말을 남기며 당대 지식층뿐 아니라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전국 단위 노동조합' 출범 이후 노동현실 개선 성과
전태일 열사는 열악하디 열악한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던 당시의 노동현실을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고발합니다.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불 붙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은 개별 사업장을 벗어나 보다 전국 단위의 조직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운동으로 옮겨갔습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총에 있어 전태일 열사는 민주노총 그 자체로, 민주노총이 전태일 열사이고 전태일 열사가 민주노총이다”라며 “전태일 열사의 노동해방, 인간해방 선언이 1970~1980년대를 거치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1991년 전노협을 거쳐 19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됐다”고 말했습니다.
1997년 합법화된 민주노총은 산별노조가 속속 만들어지며 급격히 세를 불려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노조 가입률이 10%를 넘나들 정도로 노조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현실 속에서 수십 만명의 노동자가 한데 민주노총의 깃발 아래 뭉쳤습니다. 민주노총은 보다 강력한 사회·정치적 힘을 갖게 됐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와 비정규직 확대라는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마다 민주노총은 사업장과 거리를 가리지 않고 투쟁을 벌이며 이를 막아섰습니다. 최저임금 제도가 현재 수준까지 올라서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높은 노동현실이 주52시간제로까지 도달한 데에는 민주노총의 공이 상당합니다.
한 대변인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조직으로 돌려놓았고, 현장에서 사용자에 의해 저질러지던 불법과 전횡을 바로 잡는 것을 포함해 한국경제의 체질에 맞서 임금, 고용, 복지 등 노동조건 개선을 이뤄냈다”며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진보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연대에 힘을 쓰며 사회의 민주화를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초심 잃은 민주노총…거부감 확산에 제1노총 자리 내줘
하지만, 어느덧 28살이 된 현재 민주노총은 크나큰 반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2일 창원의 한 공사현장을 찾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자신들의 장비 사용을 강요하고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돈을 지급하라고 한 현장”이라며 “자신들이 약자인 것처럼 하면서 법 위에 집단적 위력을 내세워 조폭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2021년 8월 대구 전태일 열사의 옛 집을 찾은 자리에서 “전태일의 정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민주노총이나 노동운동이 나눔의 정신, 연대의 정신을 혹시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며 민주노총이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의 강도를 더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와 압박을 갈수록 더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을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 윤 대통령은 노조 부패를 3대 부패 중 하나로 꼽으며 척결 대상으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노총의 파업은 정당성이 없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며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될 3대 부패의 하나로서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데에는 정치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일각에선 “정규직 중심의 기득권 귀족노조”, “정치적으로 편향된 강성 시위집단”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한은 노조 등이 민주노총 탈퇴를 두고 갈등을 빚거나 스타벅스 직원들이 민주노총의 노동조합 설립 도움을 거부한 일들을 보면 민주노총에 대한 달라진 기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위 일변도의 과격한 투쟁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습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에서는 고용승계 논란을 빚으며 “이제는 고인 물 다 됐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젊은 세대는 점점 예전과 같은 호응을 보내지 않았고, 2년 전부터 제1노총의 자리도 한국노총에 내줬습니다.
이에 대해 한 대변인은 “시위·쟁의·파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정권과 기득권 집단이 왜곡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흐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민주노총 초창기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 사업장은 대공장, 공공기관, 사무전문직 등에 국한됐지만, 현재는 민주노총 조합원중 비정규직 비율이 35%를 넘어 투쟁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투쟁과 의제”라고 해명했습니다.
"노란봉투법, 노동기본권 보장…새로운 대안사회 제시"
민주노총이 선택한 돌파구는 올해 신년사에서 양 위원장이 언급한 노란봉투법입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은 여야의 대립 속에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민주당을 압박하며 노란봉투법 통과를 촉구하는 상황입니다. 인권위도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민주노총 입장에서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무력화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이자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손배폭탄 방지법’입니다. 작년 대우조선해양 파업사태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조 등을 상대로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황입니다.
한 대변인은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 방탄법’이 아니며, 실질적인 노동기본권의 보장을 통해 진정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양극화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며 “노동개악 저지, 최저임금 투쟁 등에 집중하고 7월 전 조직의 총파업 투쟁을 통해 새로운 대안사회를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2일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 앞에서 시무식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