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스마트폰부터 매일 우리가 타는 자동차까지….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반도체가 쓰이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없는 삶은 단 하루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반도체 없이는 움직이지 않기에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부릅니다.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2월 9일(목) 토마토픽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사상 최악의 한파를 맞고 있는 ' 반도체 전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의 시작
지난 2018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2월 1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은 기술을 둘러싼 싸움이고, 기술 패권경쟁의 핵심 전쟁터를 반도체로 지목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본격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중국보다 강한 국력이 기술 우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중국은 반도체 자립의 필요성을 뼛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양국의 깨달음은 패권 경쟁으로 이어집니다.
-
미국 "반도체 주도권 찾겠다" : 100년도 되지 않는 반도체 산업의 역사에서 중심이 된 나라는 언제나 미국이었습니다. 현재진행형인 '반도체 전쟁'의 중심국도 미국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치고 나오자 지식재산권 침해, 정부 보조금에 따른 불공정 무역 등을 명분으로 중국을 향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화웨이를 시작으로 개별 기업이나 산업, 공급망을 직접 겨냥하는 방식으로 더욱 정밀해졌고,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관련기사
-
중국의 반도체 굴기: 중국은 반도체를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겠다며 자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2015년 ‘반도체 굴기’를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대표 기업을 키우고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입니다. 또 2025년에 일본, 2035년에 독일을 넘어서고 2045년에 미국을 추월한다는 계획인데 중국은 천문학적 금액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고 수천 개의 연구소, 회사를 지원했고 해외 전문가를 고액 연봉으로 유치하고 R&D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중국 목 조르는 미국
미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는 그 집약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 만들어졌든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나 설계 소프트를 중국 반도체 업체에 판매하려면 미 정부로부터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 슈퍼컴퓨터와 AI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울러 미 시민권 또는 영주권 소지자는 중국 반도체 업체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반도체 관련 핵심 인력 등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최첨단 반도체 개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입니다. 미국은 이미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미국 내 생산기지를 늘리고,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과도 손을 잡으면서 미국은 '화웨이 제재·칩4 동맹' 등으로 중국의 목을 조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및 기타 제품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와 관련해 미국을 WTO에 제소했습니다.
☞관련기사
미-중 반도체 전쟁 전방위 확산
미국 정부는 지난 10월 미국 기술과 장비를 활용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고강도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일본과 네덜란드 대중 제재 합류 :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보유한 네덜란드와 일본이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방침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는데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수출통제 연합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당장 봄부터 중국에 대해 수출 통제를 시행할 방침입니다.
☞관련기사
-
중국 자리 노리는 인도도 합류 : 이번엔 미국이 인도와 IT(정보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새 연합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저지해온 미국으로서도 중국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반도체 공급망인 만큼 이를 대체할 나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
미국 본토를 반도체 중심지로 : 궁극적으로 미국은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아예 ‘본토’로 이전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한국 반도체의 운명은
반도체 패권 경쟁 승리를 위해 바이든 정부가 세계 각국을 엮어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면서 한국은 더욱 복잡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국을 향한 미국의 동참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는데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동참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회사의 동반 어닝쇼크로 K-반도체에 사상 초유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K-반도체가 당분간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관련기사
-
적자만 겨우 면한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비롯해 스마트폰과 가전 등이 총체적인 부진에 빠지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습니다. 4분기 실적을 부문별로 보면 반도체를 담당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매출 20조7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에 그쳤고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96.9% 급감했습니다. 통상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이 고꾸라진 탓에 충격이 컸습니다. 메모리 분야는 재고자산 평가 손실의 영향 속에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적자를 겨우 면했습니다.
☞관련기사
-
10년만에 적자,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도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아 10년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어닝 쇼크'에 빠졌습니다. 지난해 4분기 1조 710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분기 적자는 지난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황은 글로벌 경기와 밀접하게 연동되는 경향이 있는데,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에서 메모리 비중이 90%가 넘습니다.
☞관련기사
-
반도체 수출 급감…월간 무역적자 '최대':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 수출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반도체의 1월 수출액이 지난해 1월보다 40% 넘게 급감하며 ‘반도체 수출 쇼크’를 보였는데요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월(—46.9%) 이후 최대로 하락한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새해 벽두부터 월간 기준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문제는 업황이 아직 바닥을 찍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관련기사
Chip4(칩4)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칩CHIP4’ 또는 ‘팹FAB4’ 동맹, 즉 미국과 한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으로 물론 그 대척점은 중국입니다. '칩(Chip) 4 동맹' 결성으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 칩4의 구체적 실행 계획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칩4 동맹이 가시화될 경우 그 위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장비 및 원천기술에서 압도적 우위를, 한국은 메모리 생산과 파운드리,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TSMC가 있는데요,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의 강자여서 4개국이 '반도체 동맹’을 형성하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기사
-
앞서가는 대만: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0% 이상 앞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 이어 TSMC도 3㎚ 양산에 돌입했는데요, 2025년 생산을 목표로 대만 북부 신주 지역에 2나노 반도체 공장을 짓고 2026년에는 1나노 공장을 착공해 2027년 시범 생산, 2028년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입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와 일본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짓고 있으며, 독일 드레스덴 공장 건설도 협의 중입니다. 대만 입법원은 지난 7일 ‘대만 반도체법’을 입법 예고 반년 만에 초고속으로 처리했는데요. 이 법의 핵심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업의 R&D 비용 25%를 세액공제 해주는 것입니다. 대만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R&D 혜택입니다. 또 첨단 설비 투자에 들어간 비용의 5%도 별도 공제해줍니다. 이에 따라 TSMC는 경기 둔화와 매출 감소 전망에도 올해 R&D 비용을 20%나 늘리기로 했는데, 대만 정부의 신속하고 화끈한 반도체 R&D 지원 정책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R&D 투자로 이어진 것입니다.
☞관련기사
-
부활 꿈꾸는 일본: 한때 50% 이상 점유율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은 이제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반도체 산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과거 1980년대 ‘메모리 최강자’로 군림했던 일본업계가 최근 파운드리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도요타와 NTT, 소니 등 일본 8개 대기업이 연합한 ‘라피더스’는 첨단 반도체의 국산화를 위해 설립된 합작회사입니다. 오는 2025년 상반기까지 2나노(nm·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의 프로토타입(시제품) 라인을 구축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이미 700억엔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앞으로도 추가 자금을 지원할 예정인데요. 라피더스는 이를 바탕으로 10년간 5조엔을 투자해 2027년까지 슈퍼컴퓨터·자율주행차·AI 관련 반도체를 개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또 차세대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TSMC에 4000억엔을 지원해 일본 내 공장 유치에 성공했고, 반도체 기업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TSMC는 이 지원을 받고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미국 반도체법 공포 "67조원 지원":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에 총 520억 달러(한화 약 70조 원)의 보조금을 주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공포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5년간 67조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지난해 7월 일찌감치 통과시켰습니다.
☞관련기사
-
EU 27개국 "반도체 자립" 선언: 반도체 자립을 선언한 유럽도 자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배로 확대한다는 목표하에 59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에 나섭니다. 유럽연합(EU) 27개국은 지난해 말 430억 유로를 투자하는 EU반도체법에 합의했고 430억 유로의 기금을 조성하고 기업 투자 금액의 약 20~40%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EU는 현재 10%에 불과한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여 사실상 반도체 완전 자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한국 반도체 지원 현황은
하지만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한국은 정쟁에 휘말려 반도체 지원 정책이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K칩스법’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은 단 8%. 정부가 해당 세제 혜택을 15%로 올리는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정쟁에 막혀 통과가 요원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 유효세율은 각각 25.2%, 28.3%인 반면, TSMC 10.0%, 인텔 8.5%, SMIC 3.5% 등 경쟁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도 큽니다.
☞관련기사
'반도체 쇼크'에 놀란 정부
정부는 수출역량 확대를 위해 업종별 상황에 따른 맞춤형 수출·투자 지원을 추진합니다. 특히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감소로 수출이 급감한 반도체의 경우 팹리스, 소부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메모리 의존구조를 탈피하고, 수출 안전성 강화를 적극 지원키로 했습니다. 전력·차량용 반도체, 첨단패키징 등 3대 시스템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1조5000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합니다. 또 반도체 특화단지 기반시설에 국비 1000억원을 지원하고, 반도체 펀드 3000억원, 정책금융 5300억원 등을 통해 팹리스 투자 등에도 적극 나설 게획입니다. 민간에서는 우리 반도체기업들이 올해 47조원 규모 투자를 계획 중입니다.
향후 반도체 시장 전망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 대비 7% 가량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주기성을 타서 설비와 용량이 늘면 재고가 증가해 다시 하락세를 보이는데 지금 시장 방향성을 보면 성장세가 저조해지며 냉각기에 접어드는 시기로 진단한 겁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지금 역대 최악의 침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197조원 규모의 메모리 시장은 현재 공급 과잉에 따른 엄청난 재고와 함께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급락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메모리 수요의 중요 지표인 재고가 3배 이상 증가해 역대 최대인 3∼4개월 치 공급량 수준에 달합니다.
☞관련기사
-
본격 반등은 하반기부터: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며 정면돌파를 선언했고, SK하이닉스는 신규 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업계는 현재 최악인 반도체 업황이 올해 안에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공급업체들이 설비투자를 줄였고 여기에 적극적인 감산까지 더해 공급을 크게 축소했기 때문인데요 반등 시점은 하반기가 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합니다. 자연 감산을 통해 수급량이 조절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반도체가 불황과 호황이 계속되는 ‘사이클 산업’이란 점도 기회입니다.
☞관련기사
-
챗GPT 돌풍…2026년 AI 반도체 100조원 넘을 듯: 또 하나 반도체 업계에 장밋빛 소식이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한파'가 몰아닥친 가운데 최근 업계의 화두인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를 중심으로 향후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AI 반도체가 중장기적으로 메모리 시장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 데 이어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개발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이는데요.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오는 2026년에는 861억달러(약 107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