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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공염불 된 '금융판 BTS'
입력 : 2023-02-23 오전 6:00:00
"금융위원장이 은행을 공공재로 보는 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이 한 말이든 아니든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대통령 머리에서 갑자기 나온 표현이겠어요"
 
은행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는 한 간부가 토로한 말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겪은 노병은 어느때보다 격앙돼 있었습니다. "은행은 민영화된 기업이지만 공공재로 본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20년 전의 고리타분한 논리라고도 했습니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발언의 진원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경제부처가 한통속이다는 분노일까요. 금융위원회에 대한 배신감에 더 가까웠습니다.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보니 금융권의 해석이 영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정무위에 출석한 금융당국 두 수장은 대통령 발언을 두둔하기 바빴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법을 보면 '금융시장 안정과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표현이 있다"며 "그런 점에 공공성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대통령의 발언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요즘 '공공의 적'이 된 은행들은 이자장사의 비판이 억울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실적 시즌이 될 때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생대책을 명분으로 각종 정책금융과 사회공헌, 일자리 창출을 정부로부터 요구받습니다.
 
대신에 금융위원회의 역할 부재에 대한 금융권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 체계는 금융위원회가 정책 기능을 맡고 금융감독원이 감독 기능을 하는 이원화 구조입니다. 금융위가 금융산업 진흥 정책을 만드는 자동차의 엑셀이라면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을 펼치는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과거 두 당국 수장의 행보를 보면 금감원장이 금융사를 과도하게 옥죄면 금융위원장이 시장을 아우르는 발언을 하면서 제동을 걸기도 했습니다. 두 수장의 입장이 갈릴 때마다 갈등설이 불거졌지만, 시장에서는 엑셀과 브레이크가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금융위원회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금융위가 상위기관으로서 금융감독원을 지휘, 감독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이 장관급이라면 금감원장은 차관급이죠. 그런데 금감원이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도그럴 것이 금감원장이 금리나 금융사 CEO 선임, 은행 신규 설립 허용, 성과급 체계 개편 등을 앞장 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K팝 아이돌 'BTS'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나오도록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낡은 규제들을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금융권 때리기에 밀려 아직까지 금융 규제 개혁은 이렇다할 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은행은 공공재', '돈잔치', '약탈적 금융'이라는 정치적 수사가 날 뛰는 마당에 금융판 BTS의 탄생은 요원할 따름입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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