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선행매매 혐의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조사를 받으면서 증권가의 도덕적해이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미흡한 내부 통제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사후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한탕주의적 선행매매 유혹이 여전하다고 지적하며 일벌백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 27일 애널리스트의 선행매매 의혹과 관련해 DB금융투자 사옥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특사경은 해당 연구원의 이전 근무지인 IBK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에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사경은 현재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소속인 A연구원에
포스코케미칼(003670) 관련 대규모 수주 정보를 공시 전에 입수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익을 챙긴 혐의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투자자업 종사자에 대해 미공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선행매매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라 선행매매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습니다.
선행매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0년에는 DS투자증권 전 리서치센터장의 선행매매 논란으로 업계에 큰 파장이 일었는데요. A씨는 자신이 작성하는 기업 조사분석자료(매수 추천)에 기재된 종목을 지인인 B씨에게 알려줘 매수하게 한 뒤 분석자료를 공표해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하는 선행매매 방식으로 4억5000만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지난 2021년 하나증권(당시 하나금융투자)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이진국 전 대표의 선행매매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죠. 검찰은 이 전 대표가 총 47개 종목을 매매해 1억4500만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득했다고 판단했어요. 최근 1심에서 해당 의혹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함께 기소된 리서치센터 소속 애널리스트는 선행매매 혐의가 일부 유죄로 드러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020년초에도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소속 애널리스트가 같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죠.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시스)
2016년에는
한미약품(128940) 법무팀 직원이 해와 업체와 수출 계약이 파기됐다는 정보를 유출하고 일부 애널리스트와 투자자 사이에서 미공개 정보가 공유되면서 대량의 공매도가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는 KB투자증권 소속 애널리스트가 특정 종목을 띄워주거나 지분 거래를 알선해줬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되기도 했었죠. 같은해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블록딜, 동아원, 현대페인트 등의 시세조종 사범으로 지목된 펀드매니저와 정보 제공에 나선 애널리스트 등을 사법처리 대상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여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CJ ENM(035760) 사건도 있습니다. 2013년 CJ ENM 내부 관계자가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는 정보를 애널리스트에게 알려줬고, 애널리스트가 이를 펀드매니저 등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관들이 주식을 대거 팔았고 코스닥 시장에서 CJ ENM의 주가는 9%가 넘게 급락했죠. 이에 연루된 금융투자회사는 증권사 4곳, 자산운용사 11곳으로 총 15곳에 달했어요.
언급한 바와 같이 대놓고 시세 조종을 한 경우도 있지만, 미숙한(?) 업무 처리로 시세조작이 의심되는 행위를 해 도마에 오른적도 있습니다. 작년 4월에는 한 증권사 연구원이
펄어비스(263750) 보고서 발간 당일 제시한 목표주가의 절반 수준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해당 애널리스트는 보고서 내용에는 목표주가를 13만원으로 제시했지만, 텔레그램 메시지에선 적정주가를 6만원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앞뒤가 다른 애널리스트의 메시지로 인해 시장에선 펄어비스 주가가 8% 넘게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 펄어비스의 경우 공매도 물량이 급증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애널리스트와 공매도 세력의 결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풍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증권범죄 집행유예 비중 61%
업계에서는 잊을만하면 재발하는 애널리스트 등의 시세 조작 의혹은 결국 법적 처벌이 약하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연초 발표한 2017~2021년 양형 기준을 적용한 사건에 대한 연간보고서를 보면 증권·금융범죄 양형기준이 적용된 전체사건 72건에 대한 선고내역은 증권범죄의 경우, 자본시장의 공정성 침해 범죄는 전체 39건 중에서 실형이 15건(38.5%), 집행유예가 24건(61.5%)으로 집행유예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사경의 압색 관련) 이번 선행매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증권사 분석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면서 "내부통제와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선행매매가 적발되면 무겁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재발 방지를 위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리서치센터의 경우 비용 부서라는 인식이 증권사 내에 존재하는데, 불법적이고 위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애널리스트가 세간에 오르내리게 되면 결국 리서치센터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게 된다"면서 "이는 내부적으로 비용 부서라는 인식이 더욱 커져, 결국 리서치센터 자체의 존폐까지 위협당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