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파산 여파는 국내 금융소비자들에게도 퍼졌습니다. 연일 나오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부실 우려가 커졌다는 보도도 이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금융 소비자들이 국가가 원금과 이자 100%를 지급보증하고 있는 우체국 예·적금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한 친구에게 예·적금이나 알아볼 겸 집 앞에 있는 우체국을 찾았다가 금리가 너무 낮아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는 "지금 들면 연 2.5% 금리로 거의 모든 은행 가운데 자기네(우체국)가 가장 낮다는데, 다른 시중은행도 5000만원까지는 예금자보호해주니까 연 3~4%주는 다른 데가서 들으래, 그래서 그냥 왔지"라고 말해줬습니다.
최근 "시중은행 불안하다", "쓰러질 수도 있다", "예금자보호법 개정해야한다", "예금자보호한도 높여줘야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모양새입니다.
금리보단 안정성을 택해 우체국 예·적금으로 우르르 갈아탔다는게 직원의 설명입니다. 지난해엔 우체국에 최고 연 8.95%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적금(우체국 신한 우정적금)도 있었지만 최근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이같이 예적금 금리가 낮아졌다는 겁니다.
실제 18일 기준으로 우체국의 초록별사랑 정기예금·편리한 e 정기예금·2040+α 정기예금·파트너든든 정기예금·시니어 싱글벙글 정기예금 등 9개 상품의 1년 만기 기본금리는 모두 연 2.35%, 우대 혜택에 따라 최고 금리는 연 2.35~3.15%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날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전날 기준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상품의 최고 금리는 연 3.50%로 집계돼는데요, 금리순으로 보면 우리은행 ‘WON플러스 예금’과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가 연 3.50%로 가장 높았고 KB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이 연 3.40%,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이 연 3.37%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같이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주고 있지만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안정성 측면이 장점으로 떠오르면서 금융 소비자들은 우체국으로 우르르 갈아타고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 우체국 예금 수신고는 지난 2018년 70조원에서 지난해 82조원으로 매년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대외적 여건 등의 여파로 증가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체국 예금·보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는 우체국예금(이자 포함)과 우체국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등의 지급을 책임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체국 예금사업은 국가가 경영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관장하고 있는데요, 1차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급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아와 함께 예금자보호한도가 각 금융회사별로 1인당 최대 5000만원까지로 제한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우체국은 보호한도를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100억원을 맡겨도 원금 전액과 이자를 모두 보호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예금보험제도 적용을 받는 국내 금융회사에 현행 보호 한도인 5000만원 이하를 예금한 고객이 전체의 98.1%라고 합니다. 하루 아침에 은행들이 영업정지나 파산을 당해도 국내 금융회사에 돈을 맡긴 거의 모든 고객들은 예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지급보증을 해준다는 우체국 예·적금으로 갈아타고 싶어 우르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을 보니 뱅크런도 결국 심리 싸움인 듯 합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36시간만에 파산한 실리콘뱅크은행 파산 사태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금융당국이 하루빨리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체국 '2040+α 예금'.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