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동 인왕궁 아파트 앞 골목.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문득 4~5년 전쯤 만들었던 영상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유튜브에 올려둔 다큐멘터리성 영상입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사람들이 찾아와서 댓글을 달더라고요. 알고리즘을 탔는지 조회수가 1만이 넘어갔습니다. 안 본 새 새로운 사람이 댓글을 남겼나 싶어 들어가봤습니다.
2018년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한 청년 스타트업 단체에서 서울 도시재생 스토리텔링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이 재개발 및 재건축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이 동네를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곳에는 50년이 넘은 아파트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른바 ‘초기 아파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1층에 상가가 있는 형태의 '상가아파트'가 최초로 지어진 곳들이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유진상가가 있습니다. 유진상가는 1층이 필로티 형태로 지어져 있는데요, 유사시에 다리를 폭파시켜 북한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중앙에 정원을 품고 있다거나, 여러 독특한 형태의 아파트들이 있습니다. 아파트에 얽힌 역사나 재밌는 이야기는 저도 그 당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영상이었어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었죠. 주민들의 입에서 동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으련만, 외부인인 제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경비실에 찾아갔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대답을 잘 해주지 않았습니다. 매일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죠. 시덥잖게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세탁소를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미용실이나 도자기 공방도 찾아갔었는데, 사장님들이 하나같이 그 세탁소 주인 아저씨가 50년동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세탁소 사장님께 "사장님, 여기서 50년동안 장사하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했더니 사장님은 "그건 우리 아버지인데, 그 양반은 돌아가시고 없어. 난 여기 한 지 얼마 안됐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이상한데. 주민들은 그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은 안 했거든요. 수소문 끝에 그 사장님이 제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하게 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 이상하다. 나랑 같이 한번 가봐요." 인근 장애인자립센터 소장님이 함께 가줬습니다. 그랬더니 세탁소 사장님은 "아이고 들켰네"하면서 결국 당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저보고 촬영이 서툰 것 아니냐며,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포즈도 취해주시면서요.
이렇게 저렇게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 아주 짧은 기록물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홍제동에는 별로 가지 못했죠. 사실 당시에는 영상을 만들면서도,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콘텐츠에 담아내는 게 재미있었어요.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걸 누가볼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5년 간 드문드문 달리는 댓글을 보며 이제야 제가 만든 영상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미국 이민와서 30년 살다가 어릴적 내 살던 곳이 보이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내 나이 50인데, 7살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와 내가 나온 영상이 참 소중하네요.”
“**미용실과 **세탁소.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자주 이용하던 곳인데 반갑네요. 아직 잘 계시는 걸 보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그 시대를 생생히 기록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