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현재 전 세계 영화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연출자를 꼽자면 각양각색으로 나올 듯합니다. 하지만 ‘거장’으로 불리는 연출자들은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이 사람을 거론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의 미친 재능이 탐난다’고 평가했습니다. 영화 감독들의 감독으로 불리고, 봉준호 감독이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올라 경의를 표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그 역시 이 감독의 천재성을 극찬했습니다. 1986년생, 올해로 37세. 한국영화 마니아로 알려진 이 감독. 고 유현목 감독의 1961년작 ‘오발탄’을 최고의 걸작으로 주저 없이 꼽는 이 감독. ‘유전’의 충격적 데뷔, 그리고 ‘미드소마’를 통해 ‘하얀 악몽’이란 전무후무한 기괴한 찬사를 받은 이 감독. 그리고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세 번째 작품이자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쓰고 또 쓰며 고치고 고쳐 완성 시킨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선보이는 이 감독. 지난 6월 29일 개막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 연출자. 아리 에스터 감독입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사진=싸이더스
상업 영화 감독 데뷔 이후 첫 한국 방문인 그를 지난 달 28일 서울 광진구에서 뉴스토마토가 직접 만났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모든 질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해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간결했습니다. 이건 자신의 영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든 관객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그의 의지였습니다. 그는 “내가 연출한 3편의 장편 영화들, 그 속의 내 의미는 사실 크게 중요하진 않은 듯하다. 내 영화를 본 관객의 시선과 해석이 내겐 더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 ‘유전’으로 데뷔 후 이듬해 ‘미드소마’를 선보이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그입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개인적 경험담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닌 듯 했습니다. 일단 ‘파편화’된 이 영화의 서사 구조는 쉽게 따라가기 힘든 구조임에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는 내 입장에선 상당히 단순한 얘기”라며 “주인공 보가 엄마의 집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고 웃으며 설명했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사진=싸이더스
이 영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모성’입니다. 하지만 일반적 모성은 아닙니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보여지는 모습은 사랑인지 혐오인지 증오인지 헷갈립니다. 에스터 감독은 “’모성’에 대해 내 생각을 묻는다면 난 정확하게 정의를 하기 힘들다”면서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굉장히 강력하고 친밀한 유대감으로 얽매여 있다. 그래서 그 관계가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선 그의 전작 두 편과 마찬가지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심층적 얘기입니다. 특히 이번 영화의 핵심 정서는 죄책감입니다. 그걸 통해 관객 들에게도 기묘한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에스터 감독은 “정확하게 짚었다. ‘죄책감’은 이번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라면서 “보의 인생을 경험하며 긴장감과 재미를 함께 느끼길 바라는 의도가 분명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사진=싸이더스
죄책감의 근원은 앞서 설명한 그의 영화 세계관 속 또 다른 중요 포인트 ‘가족’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이번 영화까지 세 편의 장편 연출작을 통해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해왔습니다. 데뷔작 ‘유전’을 통해선 불안과 공포의 문제를, ‘미드소마’에 대한 폭력의 시작, 이번 영화에선 개인의 죄책감에 대한 근원을 그립니다. 에스터 감독은 “가족은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유일한 관계 아닌가”라면서 “가족이란 개념을 친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낼 때 느껴지는 감정을 탐구하고 싶다. 건강한 가족이라도 기대감과 실망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벗겨 나가다 보면 ‘진짜’에 조금씩 가까워 질 것이라 믿는다. 그게 내가 영화를 하는 것의 진짜 주제일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사진=싸이더스
자신과 가장 닮은 영화로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꼽은 에스터 감독. 이 영화의 주인공 ‘보’는 극단적인 편집증 환자입니다. 에스터 감독은 “내게도 ‘정신적 문제가 있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이 세상을 가장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겠나”라면서 “나도 모르지만 내게도 하나쯤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라고 웃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