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제목이
‘대한민국 영화계
, 망해라
!’였습니다
. 전 대한민국 영화계가 망하길 빌며 고사를 지내는 걸까요
. 그럴 리 있겠습니까
. 20년이 넘게 영화 전문 기자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중 입니다
. 한국 영화계가 망하면 저도 큰일납니다
.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꼴이 하도 기가 차 쓴소리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
저처럼 영화계가 살아야 밥 먹고 살 수 있는 업계 분들. 정신 안 차릴 겁니까. 글로벌 OTT가 시장을 잠식 중입니다. 3조원이 넘는 돈을 푼다 하더니 이미 풀리고 있는 듯합니다. 영화와 드라마가 그쪽으로만 줄을 서고 있습니다. 설마 이 상황이 호재라고 생각하는 업계 관계자는 없을 것으로 믿겠습니다. 줄기차게 말해 왔듯 영화가 글로벌 OTT에 종속될수록 대한민국 영화계는 ‘하청 제작업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자생 기반을 잃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계 전체의 관심은 한해 예산 150억 규모의 부산국제영화제 살리기에만 쏠려 있습니다. ‘고작’ 영화제 하나에 말입니다. 분명 상징성이 큽니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란 타이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인물’들의 정치 싸움과 그 자리를 노리는 또 다른 ‘고인물’들은 지금 영화계 위기에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습니다. 1조 8000억 규모의 국내 영화 시장이 무너지기 직전 인데도 밥그릇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부인하지 마십시오. 그냥 밥그릇 싸움 맞고 누가 봐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 ‘범죄도시3’가 1000만 관객을 넘었는데 무슨 영화 시장 위기냐고요? 좋습니다. 여기서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범죄도시3’,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죽어 나자빠지는 한국 영화계를 두고 억지 명분과 폭력적 논리가 만들어 낸 1000만, 아닌가요. 이것도 아니라고 부인하시겠습니까.
국내 유효 스크린은 대략 2800개 정도로 봅니다. 개봉 초 ‘범죄도시3’가 2400여개를 집어삼켰습니다. 참고로 전 스크린 독과점에 꽤 관대했습니다. 전 시장 논리주의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조절돼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논리가 적용돼야 할 그때의 그 시장이 아닙니다. 100억짜리 영화가 100만 관객도 허덕이는 ‘위기의 시장’입니다. 이 시장에서 상생과 공생의 가치는 이미 잿더미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나라도 더 팔아 살아보겠다’는 시장 논리에 왜 ‘딴지’를 거냐고요? 그건 살겠다는 게 아닙니다. 창고 영화가 쌓여 있다는데도 ‘범죄도시3’ 개봉 시기 극장에 걸린 중소 상업 영화 비율을 보시죠. 그래도 모르시겠습니까. 10명 앞에 100개의 빵이 있는데 1명이 99개를 먹으면 나머지 99명이 빵 1개를 나눠 먹어야 합니다. 이게 살리자는 겁니까. 다 죽자는 거 아닌가요.
혹시 ‘코로나19’ 이전 스크린 독과점과 그 이후 독과점의 시장 영향력이 같다 보는 업계 관계자가 있다면, 그 자리 빨리 내놓고 나오길 권합니다. 수요에 따른 공급의 영향력이 비교적 균등했던 ‘코로나19’ 이전과 화제작 한 편이 수요의 전체를 뒤덮는 지금 상황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결과적으론 지금 이 상황, 한국영화 시장 팔에 꽂힌 링거액에 독극물을 주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링거를 맞고 잠깐은 정신 차릴 수 있어도 곧 독극물이 전신에 퍼져 ‘사망’합니다.
지난 시간 전 ‘대한민국 영화계, 망해라!’라는 제목을 붙여 칼럼을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알았습니다. 제 칼럼, 제목도 내용도 완전히 잘못 썼습니다. ‘대한민국 영화계, 이미 망했는가 봅니다’로 써야 했네요. 혹시 그 다음 칼럼 제목은 ‘이제 망했습니다’로 가야 할까요.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미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