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 그렇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 영화에 손이 가지 않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있을까요. 포스터만 봐도 그렇고, 출연 배우만 봐도 그렇고, 내용을 봐도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볼거리가 넘치는 콘텐츠 과잉 시대에 이런 비주얼의 이런 얘기, 과연 관객의 오감을 자극할 만한 ‘꺼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건 ‘안 봐도 비디오’란 구시대적 발상의 예상이 딱 들어 맞을 듯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앞선 이런 설명, 보기 좋게 ‘맞았습니다’. ‘정답’이란 의미의 ‘맞았다’가 아닙니다. ‘히트’ 즉, ‘때려 맞았다’할 때의 그 ‘맞았다’입니다. 그것도 두 눈 뜨고 뒤통수 제대로 때려 맞았습니다. 이런 소재로 이런 발상을 통해 이런 흐름을 유지하면서 이런 얘기를 그려낸 상상력. 그 자체가 블랙 코미디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번드레’한 겉모습 속 썩어 빠진 냄새 풍기는 실체를 고발합니다. 이건 웃자고 시작하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고, 웃을 수도 없지만 이내 섬뜩한 우리 사회 정서적 시스템의 오작동을 통렬하게 짚어냈습니다. ‘좋.댓.구’란 제목의 이 영화. ‘좋아요. 댓글, 구독’의 줄임말 인 이 영화. ‘스크린라이프’(Screen Life)기법. SNS화면, 웹 캠, 유튜브 화면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사용한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일단 ‘좋.댓.구’. 이젠 일상을 넘어 어엿한 ‘프로 직업인’ ‘셀럽’ 혹은 ‘스타’로 대접 받는 ‘유튜버’의 생태계를 파헤치는 듯한 흐름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떡밥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자세한 언급을 피하겠지만, 이 얘기의 핵심, 유튜브 생태계를 통해 장르적 재미를 끌어내려 한 의도 등의 단순함으로 해석하기엔 상당히 따끔한 무엇이 있습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우선 내용은 이렇습니다. 실제 배우인 ‘오태경’이 그 이름 그대로 주인공으로 출연합니다. 4050세대에겐 드라마 ‘육남매’의 첫째, 그리고 영화 ‘올드보이’ 속 주인공 ‘오대수’(최민식)의 고교 시절 아역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극중에서도 이 설정 그대로 출연합니다. 그는 한때 잘 나갔던 아역 출신 배우이지만 ‘아역’이란 꼬리표에 갇혀 잊혀진 배우가 됐습니다. 그런 그가 돌파구로 찾은 길, 바로 ‘유튜버’였습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채널 개설 초기 구독자 수십 명에 불과한 오태경. 그는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치킨 먹방’ ‘혼술 먹방’ 등 눈물겨운 노력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그런 그가 절치부심으로 택한 방법은 구독자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노예 콘셉트’. ‘올드보이’ 오대수 분장을 하고 고등학교를 찾아가 일진들을 참 교육하는 미션부터 여성 속옷 환불 미션 등 기상천외함이 이어집니다. 곧바로 사람들 흥미를 끌기 시작하면서 점차 채널 인기에도 ‘떡상’(급격한 상승)과 함께 활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구독자 1만 돌파에 성공한 그날. 슈퍼챗 10만원짜리 ‘노예 미션’이 들어옵니다. 바로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남자의 사연을 알아봐 달라는 것. 성공할 경우 사례금만 1000만원. 여기서부터 ‘좋.댓.구’의 진짜는 시작됩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아니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은 사실 이 영화 마지막까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치밀한 뒤통수 때리기를 감춘 비밀에 있습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일단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질문이 쏟아집니다. 이 영화 자체부터가 그렇습니다. 주인공 오태경. 그는 실제 배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나긴 슬럼프를 겪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최고 아역 배우였지만 지금은 배우의 희미한 느낌만을 간직한 ‘배우인 것 같은’ 배우입니다. 그 이미지가 영화 속에도 고스란히 차용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의 진짜인지, 아니면 영화 속 설정 즉 가짜인지.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태경의 이름을 빌린 전체가 몽땅 가짜인지. 정말 도통 알 길이 없습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오태경의 연기가 관객들 판단력을 쥐고 뒤 흔드는 일종의 방아쇠 즉 트리거 역할을 소름 끼치게 담당합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당겨진 방아쇠가 겨눈 표적, 우선 유튜브(버)입니다. 누군가를 타깃으로 한 일종의 저격이 아닙니다. 그 세계관에 대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웃기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살벌하고 처절하고 그래서 눈물겨운. 그런데 그 모든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줄타기로 그려지니 보는 입장에서 시쳇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영화 속 유튜브(버)의 세상이 그렇습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줄타기의 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역할은 극중에 등장하는 광화문 광장 피켓남. 일종의 맥거핀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이 얘기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실체적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다가 무엇을 놓고 보는지에 따라서 ‘좋.댓.구’가 갖는 의미는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좋.댓.구’의 주제성이 아이러니를 기반으로 한 블랙 코미디라 단정 지어도 부인할 요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드러나는 이 영화의 실체적 진실은 상당히 섬뜩합니다. 블랙 코미디란 장르적 흐름을 유지하지만 이 영화의 진심은 우리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점을 비꼬는 듯한 냉소에 있을 듯합니다. 유튜브 그리고 유튜버란 설정을 통해 그려지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지금 우리 사회의 시선으로 바라 보자면 의미와 무의미 그 어디로 해석을 해도 관점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여기서 ‘좋.댓.구’의 진짜가 등장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짜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진짜일지, 아니면 진짜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가짜일지. 통상적 개념의 양비론과 양시론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적 관점을 깨버리는.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 사회 시스템의 핵심을 꿰 뚫고 다가서는 가장 날카로운 ‘블랙 코미디’의 진심은 아닐지 의심을 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이 말을 결과적으로 쉽게 풀어내면 이렇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실재적 실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 핵심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성이라는 것. 그 방향에 따라서 이 영화 속 진짜와 가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진심과 거짓의 경계는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경계를 드러낼 것입니다.
영화 '좋.댓.구' 스틸.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가장 단순한 접근이 꽁꽁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걸 역으로 뒤엎어 모순이라 지적하는 질문이 바로 ‘좋.댓.구’란 제목의 이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코미디는 섬뜩할 정도로 시커멓습니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속이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진실도 거짓도 보는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일 뿐입니다. 우린 모두 진실 앞에 눈 먼 장님입니다. 이 ‘작은’ 영화만이 그걸 날카롭게 꿰뚫고 있습니다. 올해 지금까지 등장한 가장 날이 선 영화적 시선입니다. 개봉은 오는 12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