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뭐라 설명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수식어와 어떤 표현 그리고 그 어떤 미사 어구를 가져온다고 해도 정확한 설명은 분명하지만 ‘힘들다’에 가깝습니다. 굳이 확정적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면 이 정도가 가장 어울릴 듯합니다. 흥행과 참패, 이 두 가지에 가장 온전하게 가까운 연출자. 그 정도로 이 연출자, 즉 감독에 대한 호불호의 평가는 그의 데뷔 이후부터 극명했습니다. 일단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작가였습니다.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된 흥행작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썼다는 입소문이 퍼지면 투자와 배우 캐스팅 심지어 연출 캐스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에 충무로는 다시 한 번 들썩였습니다. 연출 데뷔작으로 숨 고르기를 한 그는 이후 선보이는 작품마다 국내 상업 영화 시장을 들썩이게 만드는 역대급 흥행작부터 희대의 문제작을 번갈아 내놨습니다. 일부의 시선으론 극단적 상업주의 감독이란 비난도 받아 왔습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흥행작보다 실패작이 더 많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어떤 표현을 둔다고 해도 이 감독, 논쟁과 비난의 화살보단 열광과 관심과 호응의 기대치가 더 높은 것이 팩트입니다. 바로 박훈정 감독입니다. ‘신세계’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느와르를 선보였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마녀’ 시리즈를 진두지휘 중입니다. 그가 ‘귀공자’란 영화를 선보이면서 언급한 여러 자신의 작품적 세계관, 분명 흥미롭고 또 재미가 있습니다. 박훈정 감독이라면 충분히 그리고 완벽하게 당연해야 할 반응입니다.
영화 '귀공자'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귀공자’, 아니 처음 세상에 알려진 내용은 ‘슬픈 열대’란 제목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박훈정 감독이 정말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그려가던 것이었습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다큐멘터리를 봤고, 그 내용은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계 혼혈인 즉 ‘코피노’들이었답니다. 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코피노들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고 그렇게 그 감정을 글로 순식간에 쏟아냈답니다. 박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잘 만들고 싶었던 얘기’였답니다.
“꽤 오래 전인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정말 화가 난다’였어요. 자식을 낳고 나 몰라라 하는 한국의 아버지들.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걸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는데 금방 나오더라고요. 화도 나도 슬프기도 하고. 또 씁쓸하면서도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그래서 당시에는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지었었죠. 주인공 ‘마르코’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런 제목이 나올 만 했어요. 근데 촬영하면서 자꾸 얘기가 밝아지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제목이 ‘귀공자’가 된 거죠.”
영화 '귀공자'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박훈정 감독은 충무로에서 배우 발굴의 독보적 혜안을 가진 연출자로 유명합니다. 그의 영화, 특히 ‘마녀’ 시리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녀’ 시리즈에 나온 모든 배우들이 현재 충무로 최고의 스타급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귀공자’의 김선호와 고아라를 캐스팅한 것도 어쩌면 박훈정 감독의 혜안이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의 고집 혹은 도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두 사람, 그 이전까진 로맨틱 멜로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반대 많이 했어요. 일단 안 어울리니까요(웃음). 근데 전 그럴수록 더 확신이 들었죠. ‘내가 맞았구나’ 싶었어요. ‘이 배우가 이 배역에 딱 맞는 거구나’ 싶었죠. 다른 분들은 못본 그 배우의 이미지를 제가 좀 먼저 봤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걸 선점하려고 냉큼 캐스팅을 완료했죠(웃음).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김선호, 고아라에 대한 평가가 나온 것을 보고 그나마 안도의 한 숨을 쉰 게 ‘역시 내가 잘 봤구나’ 싶었어요. 하하하. 김선호의 사생활 문제가 나왔을 때도 사실 대안이 없었고, 김선호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가 없다고 확신했기에 밀어 붙였어요. 결과는 너무 만족스러웠죠.”
영화 '귀공자'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김선호 고아라 외에 김강우 등을 캐스팅하는 데 거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박훈정 감독을 고민하게 만든 배역도 있습니다. ‘귀공자’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극중 코피노 설정의 ‘마르코’였습니다. 무려 19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르코’에 선택된 인물은 신인 배우 강태주. 박훈정 감독의 눈에 강태주는 ‘마르코’ 그 자체로 보였답니다. 마지막 최종 2인까지 두고 고심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태주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답니다.
“그 친구 눈빛을 보시면 묘해요. 굉장히 깊다고 해야할까.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되게 슬픈 기분이 들어요. 나이도 어린 친구가 뭔 사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들어보니 배우로서 고생도 많이 했더라고요. 사실 오디션에서 최종 몇 명까지 올라오면 연기는 논 외에요. 뭔가 그 배역과 맞는 부분을 더 찾게 되는데 강태주의 기묘한 유약함이 마르코의 생활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 '귀공자'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귀공자’ 속 액션은 박훈정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 시종일관 뛰고 부딪치고 구르고 때리고 등. 배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걸 디자인한 감독과 스태프들의 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보는 관객 입장에선 엄청난 쾌감이 따릅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한 가지 관객들의 입방아 올랐던 극중 액션 장면. 바로 다리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며 웃는 박훈정 감독입니다.
“(웃음) 그 다리 높이가 실제로 20미터 정도인가 그래요. 당시 김선호 강태주는 물론 스태프들도 ‘이걸 뛴다고요?’라고 놀랐었죠. 설정상 두 사람이 초능력자 아니냐는 평도 봤어요. 하하하. 전부 아니고요. 당시 흐름상 다리에서 뛰어 내려야 하는 장면이 필요했는데, 고가 도로가 있는 곳은 전부 차량 통행이 많았어요. 근데 그곳만 차량 통행이 거의 없었어요. 폐쇄된 도로였거든요. 하하하. 섭외가 거기 밖에 안돼 거기서 찍은 겁니다. 별다른 설정 때문이 아니에요. 하하하.”
영화 '귀공자' 촬영 현장에서의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박훈정 감독을 얘기하면 반드시 거론돼야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느와르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신세계’ 그리고 시리즈가 현재 진행형이고 그의 다음 작품 ‘폭군’과도 세계관을 공유하는 ‘마녀’ 시리즈입니다. ‘마녀2’가 작년 6월에 개봉했지만 ‘신세계’는 2013년, 다시 말해 개봉한지 10년이 됐습니다. 두 시리즈에 대한 후속작 기대가 박훈정 감독 팬들에겐 가장 큰 바람이자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일단 ‘신세계’는 시퀄(Sequel: 후속편) 시나리오를 준비해오고 있었어요. 이정재씨와도 계속 교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 건 이자성(이정재)이 좀 더 중후한 느낌의 중년이 된 뒤의 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정도에요. 분명한 건 ‘신세계2’는 반드시 나온다는 겁니다(웃음). ‘마녀’시리즈는 일단 어디까지 확장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함부로 거론할 수가 없는 게 저작권이 워너 쪽에 있어서(웃음). 하지만 ‘마녀’도 팬들이 가장 원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두 편다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 작품 ‘폭군’도 아주 재미있을 겁니다.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