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성남 기자] 7800억원 가량의 개인투자자 피해를 야기한 라덕연 주가 조작 사건의 공판이 진행중인데요. 라덕연 측은 재판 과정에서도 주가 폭락 배후설을 주장하며 자신들도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객관적인 매매 데이터를 근거로 세간에 돌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 요목조목 짚어보기로 결정했는데요. 라씨 측 주장인 '주가 폭락 배후설'의 신빙성에 대해 톺아봅니다.
김익래, 공매도 세력 결탁해 주가 인위적 하락 유도?
라덕연 측은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공매도 세력과 공모해 대규모 블록딜을 활용, 주가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켜 수천억원의 차익을 얻었다고 주장 중인데요. 해당 내용은 다우데이타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량을 보면 허위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집니다.
19일 한국거래소 공매도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20일(김 전 회장 블록딜 시행일) 기준으로 4월의 일평균 공매도 매매비중은 11.3%였고요. 실제 폭락이 일어난 하한가 발생 당일인 24일에는 2.1%로 오히려 공매도 거래량이 줄었습니다. 거래량 전체에서 공매도 비중을 살펴보면 4월20일 11.3%, 21일 7.0%, 24일 2.1%로 확인됩니다. 시계를 돌려 올해초부터 보면 1월에 12.2%, 2월에 10.8%, 3월에 10.2%로 집계됩니다. 사실상 김 전 회장의 블록딜 전후 유의미한 공매도 증가나 수천억원의 차익을 거둘 공매도 관련 거래는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라씨 측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김 전 회장이 블록딜로 주식을 매각한게 아니라 실제로는 공매도 세력에게 빌려줬다는 '파킹설'을 내놨습니다. 파킹을 했다면 주가 급락 시기에 공매도 물량이 나왔을텐데요. 실제 다우데이타의 주가 급락시 공매도 잔고 추이에선 4월21일 공매도 잔고는 29만5087주이고요. 이틀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던 24, 25일과 하한가로 출발 후 20% 가까운 급락으로 마감한 26일까지 공매도 잔고 수량은 10만4925주로 19만여주 가량 줄어든 걸로 확인됩니다.
급락세를 탔던 3일 모두를 하한가로 계산해도 공매도 세력이 19만여주로 거둘수 있는 수익은 김 전 회장 블록딜 가격(4만3245원)을 기준으로 53억원이 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씨 측이 주장하는 수천억원의 차익이 발생한 거래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블록딜 물량을 받아간 주체가 주가 급락으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본 상황에서 공매도를 통한 수십억원의 이익을 위해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어 보이네요.
공매도 파킹설과 관련해선 김 전 회장 측이 실제 잔고 및 거래명세서를 공개하면서 '허위사실'이란 점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공표된 거래소 집계만 보아도 공매도 세력과 결탁해 수천억원의 차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해보이는데, 라씨 측이 이런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왜 하필 폭락 이틀전 블록딜 나왔나?
두번째 구설은 라덕연 일당의 주가 조작 상황을 김 전 회장이 인지하고 폭락이 발생하기 이틀전에 블록딜을 실행했다는 부분인데요.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김 전 회장이 블록딜 진행을 최초 결정하고 검토한 시점은 올해 1월입니다. 공교롭게도 해당 시점은 다우데이타 주가가 최고 수준까지 올랐던 때와 일치합니다. 다우데이타는 작년 한해 동안 104.97% 급등한 이후 올 1월에 60% 가까이 추가 급등세를 보인바 있습니다. 주가가 고공행진을 벌이는 상황에서 안정된 지분율을 가진 대주주 측의 일부 물량에 대한 블록딜 검토는 어찌보면 당연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김 전 회장의 블록딜 검토는 무산되는데요. 이유가 재밌습니다. 김 전 회장이 지난해 9월 다우데이타 주식 2000주(2700만원 상당)를 매수한 기록이 있어 단기매매차익 반환 이슈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단기매매차익 반환제도는 자본시장법상 회사의 주요주주나 임직원이 법인의 주식 등을 6개월 이내의 기간에 매매해 차익을 얻었을 경우 해당 차익을 법인에 반환하는 제도입니다. 작년 9월말에 김 전 회장이 2000주를 거래했으니 해당 이슈가 해소되는 6개월이 지난 시점인 3월 중순이 되서야 블록딜 검토는 재개됩니다. 3월 주가 흐름 역시 4만원대 후반에서 5만원 초반대로 급등 이후 안정세를 타고 있었으니 시점이 늦어진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3월말에 김 전 회장측은 대규모 블록딜 경험이 많은 외국계 주관사를 물색했고, 4월초 모건스탠리를 최종 선정해 사전 준비작업 2~3주 이후 4월19일 내부 심의를 완료하고 4월20일 블록딜 거래를 성사했습니다. 김 전 회장 측은 블록딜이 체결된 당일 해당 사실을 공시했고요. 라씨 측 주장대로 주가 조작 정황을 인지하고 급작스레 블록딜을 결정했다는 정황은 어디서도 확인이 안됩니다.
세금 절감 위한 인위적 주가 하락?
세번째 구설은 상속세, 증여세 절감 효과를 노린 인위적인 주가 하락을 유도했다는 부분인데요. 이 부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한 사실무근입니다. 다우데이타의 최대주주는 이머니(31.56%)이고, 김익래 전 회장의 아들인 김동준 대표(6.53%)가 최대주주로 있는데요. 사실상 김 대표 개인 지분 6.53%와 이머니 보유 지분을 합하면 38.09%로 이미 다우데이타의 최대주주입니다. 지배구조 개편이 2021년에 현재 상태로 이미 완료됐습니다. 김 전 회장은 2021년 10월28일 자신이 보유한 다우데이타 주식 200만주를 자녀 3명에 증여했는데요.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세액은 해당 주식이 증여된 당시를 기준으로 확정됩니다. 현재 주가 여부가 이미 확정된 증여세액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나아가 김 전 회장측이 추가적인 증여를 위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행위에 가담했다면 시세조작이 될텐데요. 시세조작범이 되면 금융회사 임원은 커녕 대주주임에도 10% 이상의 의결권도 행사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김 전 회장측이 위법적인 행위를 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됩니다. 다우키움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머니(38.09%)→다우데이타(45.20%)→다우기술(41.20%)→키움증권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시가 총액을 기준으로 다우데이타(4990억원), 다우기술(8058억원), 키움증권(2조3945억원) 등 수조원의 지분 가치를 보유 중인 오너 일가가 절세를 위해 주가 조작에 관여했다는 설명을 하기엔 소위 말하는 '다마(크기)'가 너무 작죠. 구설을 하기엔 좋지만, 사실 관계에 대해선 명확한 확인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관련 주가조작 의혹 핵심으로 지목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사진=뉴시스
최성남 기자 drks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