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성남 기자] 라덕연 일당의 주가 조작 사건 관련 재판에서 라씨 측은 불법성이 확인된 사실에 대해선 죄를 시인하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는데요. 핵심 쟁점인 주가 조작과 관련해선 무죄를 주장 중입니다. 여전히 주가 폭락 배후설을 들먹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앞서 주가 폭락 배후설에 대해
다우데이타(032190) 매매 창구 분석 등을 통해 라씨측 주장이 사실무근이란 점을 상기했는데요. 이번엔 일반적인 주가 조작 사건과 달리 라씨 측이 지속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는 대응 전략을 취한 이유에 대해 톺아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위 말하는 '괘씸죄'가 추가될 개연성이 있어 보입니다.
책임 전가는 투자자 손실 보전 명분쌓기 전략
표=뉴스토마토
우선 이번 사건에서 라씨 측 책임 회피 사유는 거액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행위라는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형사적 처벌은 차치하더라도 민사 소송을 통해 손해 배상 청구 등을 진행해 라씨에게 투자했던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명분이란 것이죠. 라씨는 "(본인이) 감옥 가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수익을 낸 김익래 회장의 불법성을 밝혀 손해배상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구속 전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이런 전략이 오히려 괘씸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괘씸죄는 법전에는 없는 죄명이지만, 판사의 재량으로 형량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불리한 사건에서 자백하지 않고, 본인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전략이 '밉상'으로 찍힐 수 있다는 것이죠.
이번 재판에서 라씨 측이 제기한 주가 폭락 배후설은 판사의 제지를 받기도 했는데요. 지난달말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라씨 측 변호인은 "투자자, 피해자 등이 궁금한 것은 과연 누가 이 대폭락을 시켰느냐, 아무리봐도 세력이 있는 거 같은데 그 세력인 누군지 알고 싶다는 것"이라며 "여기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를 보고 있다"며 '주가폭락'이 주요 쟁점이라는 취지로 주장을 펼쳤습니다.
재판부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는데요.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는 내용은 '시세조종에 의한 부당이득 취득' 부분이지 폭락이 아니다"라며 "시세 조종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리할 수밖에 없다"고 제지에 나선 바 있습니다. 지속적인 쟁점 사안에 대한 부인은 오히려 재판부의 쾌씸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재판부가 밝힌 중요한 쟁점은 "피고인들은 주가 폭락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게 아니라 주가 폭락 직전까지 투자자들의 정보를 이용해 통정매매 등을 이용해 8개 종목으로 7300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것으로 기소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주가 조작을 통해 거둔 부당이익에 대한 재판이란 것이죠. 여기에 2019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채 투자를 일임받아 수수료 명목으로 약 1944억원을 챙긴 혐의도 있습니다.
구속 전까지 지속적 언론 플레이…피해자 코스프레 구축 정황
라씨 측이 책임을 전가하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나설 것이란 정황은 이미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발생했을때부터 감지됐습니다. 라씨 측이 구속되기 전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갑작스레 주가가 폭락하면서 자신들이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보도가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죠.
라씨 측의 책임 전가 이유는 기보도된 유수의 인맥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중견기업 회장과 대표 등이 얽혀있기 때문인데요. 라씨 입장에서 형사적으로 불법이 완연히 드러난 사실에 대해선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주가 조작 관련해선 증거 불충분 등으로 무혐의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죠. 죄를 입증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니 라씨 측은 지속적인 억울함을 호소해 여론전을 펼치겠단 복안을 짠 셈입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7만여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로 알려진 만큼 이들에 대한 손실 보전이 가능하다면 라씨 측 입장에선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죠.
라씨는 구속 전 언론 매체 인터뷰에서 무더기 하한가를 맞은 8개 종목의 주가 흐름은 자신이 설계한 것이 맞다는 점을 인정했고요. 투자자들은 돈만 맡겼고, 종목 선정과 매매 등은 모두 라씨 일당이 대신하는 '투자일임' 방식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영업을 한 사실은 드러났고, 이 부분은 라씨 측이 인정한 부분입니다.
라씨 측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위해 본인이 4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계좌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피해자 코스프레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언론도 이제 더이상 라덕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하지는 않고 있는데요. 아마도 주가 조작 배후설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고, 대규모 피해를 야기한 주가 조작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된 라씨 입장을 언론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현재 검찰은 라씨 측을 범죄 단체에 준하는 기업형 주가 조작 범죄로 규정하고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범단죄 적용 여부와 무관하게 주가 조작에 따른 부당 이득액이 입증되면 최대 5배까지 벌금을 토해내야 합니다. 여죄의 규모가 커질 수록 형사 건과 별개로 라씨 측은 대규모 민사 소송에 휘말릴 개연성이 큽니다. 이번 재판의 결과가 시세 조종에 따른 주가 조작으로 귀결되면 결과적으로 라씨 측은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무등록 투자일임업)과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등에 따라 손해 배상 책임모두를 떠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한편 검찰은 라씨 측 일당이 숨겨둔 재산을 계속 추적해 동결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허가한 추징보전액은 현재 221억원 수준입니다. 범죄 수익 은닉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호안에프지 등 법인 10곳의 해산 명령도 청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