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름, 딱 세 글자. 그 안에 담긴 힘의 크기. 일단 확실합니다. 김혜수는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그가 연기를 하면 ‘정말 그 인물이 그럴 것 같다’란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그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모든 작품의 배역들을 떠올리고 그 당시 그 배역을 통해 느꼈던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무조건 그리고 100퍼센트 입니다. ‘정말 그럴 것 같다’라는 근거 있는 확신. 두 번째는 ‘보증’입니다. 그가 작품 보는 눈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가 선택한 작품이 그때마다 딱딱 들어 맞게 흥행에 성공한 것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분명한 건 그가 출연한 작품은 거의 대부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세 번째, 사실 이 세 번째가 가장 확실하고 가장 또렷한 이유일 듯합니다. 출연 배우 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있다면 대부분의 예비 관객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영화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출연을 결정했다면 투자에 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앞선 두 가지 이유가 너무도 확실한 믿음을 가져다 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감독 조차 그 배역에 그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기획하고 쓰고 연출한 영화 ‘밀수’. 그리고 이 영화의 실질적인 타이틀롤이자 주인공. ‘조춘자’를 연기한 배우 김혜수. 앞선 설명 모두가 김혜수에 대한 얘기입니다. 분명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입니다.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일단 김혜수,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연출하는 ‘영화인’ 기운데 그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날개 없는 새가 하늘을 날아가는 걸 찾게 더 쉬울 질문입니다. 충무로 대표 흥행 메이커 류승완 감독이 ‘밀수’를 기획하면서 제일 처음 생각한 인물이 김혜수일 것이란 점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김혜수 역시 대한민국 대표 흥행 배우라면 무조건 함꼐 하고 싶은 류승완의 러브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경력이 꽤 되는 데 류 감독님과는 첫 작업이라 기대가 컸죠. 일단 이 영화의 출발도 너무 흥미로웠어요. 감독님이 어디서 본 기록 한 줄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해녀가 밀수에 가담을 했다’라는. 1970년대란 시간적 배경도 너무 좋았고, 해녀는 제가 단 한 번도 경험 못해 본 직업이었죠. 밀수도 마찬가지고요. 이 영화의 첫 시작은 제 개인적 흥미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팀원들의 호흡이 너무 좋았어요. 그게 절 이 영화에 빠지게 했던 거 같아요.”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밀수’에 합류한 김혜수. 데뷔 37년차 최고참이지만 그는 어떤 작품 어떤 현장에서도 막내처럼 일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밀수’에서 김혜수와 투톱을 이뤘던 염정아는 ‘저 언니처럼 철저하게 준비하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는 배우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모두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은 김혜수를 두고 ‘연출부 같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극중 김혜수가 연기한 ‘조춘자’의 외모 거의 대부분은 김혜수의 아이디어였답니다.
“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배우들이 그 정도는 해요. 그저 그 과정이 작품으로 다가서는 과정이라고 전 생각하고 하는 거에요. 제가 일을 하는 방식일 뿐이에요. 감사하게도 춘자의 외모 아이디어를 제작진에 많이 반영해 주셨어요. 춘자의 외모는 제 생각에 ‘생존’이란 코드와 많이 맞닿아 있다 생각했어요. 거기에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를 더해서 원단이나 디자인 등을 연구해서 패션을 제안했죠. 극중 장도리(박정민)의 의상도 당시 이소룡이 ‘핫’했기에 의상팀에 제안하기도 했어요.”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춘자’, 김혜수가 연기한 ‘밀수’의 주인공. 김혜수는 자신의 연기 인생 중 ‘춘자’가 가장 상스러운 캐릭터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값이 싸다는 느낌보단 새로운 느낌의 ‘상스러운’이 더 맞아 보일 정도로 김혜수의 ‘춘자’는 눈에 띄었습니다. 김혜수는 앞서 외모를 구성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떠올린 코드. 즉 ‘생존’이란 단어를 ‘춘자’에게 대입시켜 표현했습니다. ‘춘자’는 결국 ‘생존’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전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 남는 것에 모든 것이 포커스가 맞춰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네가 안 멈춰? 어디 해보자’란 심정으로 진숙(염정아)과 따귀 레이스도 하잖아요(웃음). 아마 진숙이 안 멈췄으면 끝까지 갔을 거에요. 그런 생존 본능은 아마도 태생적인 외로움에서 오지 않았나 싶어요. 보여지는 건 에너지 넘치고 밝지만 사실은 고아 출신이고 반면 곁에 있는 진숙은 모든 걸 다 가진 금수저 같은 존재고. 불안하고 무서웠을 거에요. 그래서 서울로 간 춘자가 그 불안함과 외로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화려하게 꾸미는.”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밀수’는 류승완 감독 연출이란 점에서 상당히 많은 주목을 받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류승완 특유의 액션 그리고 그의 색깔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범죄 활극이 가장 잘 녹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서사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여성 투톱이 가장 잘 드러난 구조이기도 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 이후 중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두 번째 여성 투톱이기도 합니다. 김혜수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주변에선 그렇게 다들 봐 주시는데, 전 ‘여성 서사’로 한정시키고 싶진 않아요. 춘자와 진숙 외에도 각 캐릭터들의 앙상블과 시너지가 빛을 발해야 잘 돌아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권 상사를 말없이 끝까지 수호하고 지키는 그의 오른팔 ‘애꾸’도 있고, 순박한 어촌 노인이지만 인간적인 정을 많이 담고 있는 진숙의 아버지 ‘엄선장’도 있잖아요. 해녀팀들은 또 어떻고요. 그런 인물들, 또 그들의 관계성이 정말 잘 균형을 잡고 돌아가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밀수’를 떠올리면 김혜수의 고충이 떠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김혜수는 평소 물을 좋아했고 그래서 두려워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런데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촬영 당시 자신도 모르게 생긴 ‘물 공포증’으로 인해 촬영 전부터 너무 큰 걱정이 앞섰다고 합니다. 일단 류 감독은 김혜수에게 ‘많은 부분에서 대역을 쓸 것이다’고 말했답니다. 결론적으로 수중 장면에서 실제 얼굴이 보이는 장면은 대역이 아닌 김혜수 본인이 촬영했답니다.
“’도둑들’ 때 저도 그게 공황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공황이라고 하더라고요. 저 스스로 호흡 통제가 안됐고 몸이 안 움직이는 경험을 했었어요. 제가 넷플릭스 ‘소년심판’ 촬영 때라 수중 훈련을 제대로 많이 못했어요. 그래서 본 촬영 때 너무 걱정을 했는데, 촬영 전 테스트하는 시간이 좀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공황 증상이 없더라고요. 뭔가에 홀린 느낌이었어요. 촬영 중반에는 정아씨가 ‘이 언니, 이제 물 속에서 말도 해’라면서 신기해 하기도 했어요(웃음).”
류승완 감독, 김혜수는 ‘밀수’ 출연을 결정하면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로 ‘류승완 감독’을 꼽기도 했습니다. 정말 수 많은 스타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해 본 김혜수였습니다. 그 리스트에 없던 류승완 감독. 그의 러브콜에 즉시 화답하고 현장에 합류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현장이 행복하다’라고 합니다. 김혜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솔직하게 소개해 줬습니다. 자신도 마냥 행복하기만 한 현장은 없었다고. 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현장은 그런 자신의 선입견을 깨주는 첫 번째 현장이었다고.
배우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현장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어요.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걸 얘기할 수 있어서 현장이 좋은 건데. ‘밀수’의 현장은 그냥 행복했어요. 감독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어요. 그럼 다른 감독님은 아닌가? 그건 아니에요. 근데 류 감독님은 좀 더 포괄적으로 배우가 연기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제 파트너였던 염정아씨와 촬영 중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까지 오더라고요. 살면서 처음 느낀 경험이었어요. 내가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이 나인 것 같은 느낌을 처음 받았어요. 그 경험을 어디서 하겠어요. 이런 작품의 배우니까 경험한 거고, 그걸 느끼게 해준 감독이 류승완이었어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 마지막 조인성이 연기한 권 상사와의 묘한 만남이 화제를 모을 듯합니다. 권 상사는 극중 사실상 악역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하지만 권 상사와 조춘자는 극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관계를 관객들이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김혜수와 조인성은 그걸 약속이나 한 듯이 만들어 버렸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둘의 관계가 시나리오에선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단 겁니다. 더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러브라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든 감정 라인이랍니다. 인터뷰 마지막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을 물었습니다.
“저희 모두 인성씨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만세 불렀어요(웃음). 임팩트가 있는 역할이고 그래서 감독님이 인성씨를 캐스팅하신 것 같고. 일단 인성씨는 연기를 할 때 그 눈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너무너무 깊어요. 멋있는데 너무 무섭기도 하고. 정신이 나갈 듯하다가도 바짝 들게 만들기도 해요. 너무 친하고 편한 후배이자 동생인데 연기를 하면 권 상사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러브라인? 저흰 그렇게 생각 안하고 만든 장면인데 그렇게 봐주시는 것도 재미있어요. 현장에서 거의 즉흥적으로 나온 연기인데, 개봉하고 나면 무슨 얘기가 나올지 기대가 많이 되요.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