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사태를 보며 영화
‘말아톤
’의 정윤철 감독이
‘기생충
’을 소환한 덕에 봉준호 감독이 천재란 생각을 다시금 합니다
. 저 역시
‘기생충
’이 실시간 실사판으로 상영되는 걸 매일 관람 중입니다
. 이번 촬영지는 한 가정집이 아닙니다
. 무대는 대한민국 전역입니다
. ‘갑
’ 중심 사회구조 속에서
‘을
’끼리 파이 다툼을 하다 서로를 죽이게 되는 비극적 현실이 줄거리입니다
. 이 싸움의 결말에서 승자는
‘을
’일까요
. 아니면 처음부터 링에 오르지도 않았던
‘갑
’일까요
.
한 교사의 죽음으로 인해 추락한 교권과 학부모 ‘갑질’ 문제가 링에 오릅니다. 전 국민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교사가 얼마나 많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는지 알게 됩니다. 분노한 여론이 ‘갑질’ 학부모를 향합니다. 그때 한 웹툰 작가가 특수교사를 고소한 사건이 알려집니다. ‘갑질’ 학부모를 향하던 전국적 분노가 이 작가에게 집중됩니다.
그렇게 모인 분노는 그 밀도가 높고 단단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스치기만 해도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분노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분노를 담아낼 표적이 너무 작았기 때문일까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이 작가의 아들도 일부 어른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웹툰 작가 한 명에게 모아졌던 분노가 그 작가의 아들에게도 향하며 힘이 분산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삐가 풀린 힘은 걷잡을 수 없이 또 다른 대상을 찾아 확산됩니다. 그 대상은 그 작가의 아들이 속한 사회적 집단인 ‘발달장애인’입니다.
이렇게 언론이 마련한 링 안에서 대중은 자신이 언제 게임에 참가하게 됐는지도 모른 채 장애 혐오를 쏟아내는 쪽과 맞서는 쪽으로 대립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대립하고, 특수교사와 학부모가 대립하고, 장애 학생 분리 교육을 찬성하는 여론과 그것은 차별이라 외치는 여론. 치고 박고 물고 뜯고 링 안이 서로의 피로 물들어가는데 아무도 게임을 끝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부터 ‘갑’은 링 위에 오르지도 않았단 겁니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갑’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고 평소 자녀 담임에게 전화 한 번 해 본 적 없던 상식적 서민들끼리 인터넷 익명성 뒤에 숨어 서로를 공격합니다.
비장애인 대 장애인 ‘갈리치기’로 재미 봤던 정치권은 내년 총선까지 이 분위기를 끌고 갈 생각인지 ‘숫자 많은 편이 내 편’ 행보입니다. 힘을 합해 교육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특수교사와 학부모는 서로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장애 혐오’ 대 ‘장애 인권’으로 나뉜 여론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손가락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 상층부를 차지한 ‘갑’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시간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 따위엔.
선량하고 열심히 사는 개인들, ‘을’이 ‘을’을 공격하고 상처 입히고 분노합니다. 이 개싸움을 웃으며 지켜보는 이는 과연 누굴까요. 링 안에서의 치열한 전쟁에 어떤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면 영화 ‘비닐하우스’를 권합니다. 우리 사회의 ‘을’이 어떻게 가해의 굴레에 빠져들고 그 굴레 안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지 볼 수 있습니다.
‘기생충’에서 ‘을과 을’은 서로를 죽이고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갑’도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 죽음으로 나머지 ‘갑’들 인생은 별 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링 안에서 싸웠던 모든 ‘을’은 그 한 번의 싸움으로 모든 걸 잃었습니다.
봉준호란 천재 감독이 보여줬습니다. 연대해야 할 ‘을’끼리 서로를 죽이는 사회 구조. ‘을’의 인생엔 관심조차 없는 ‘갑’. ‘비닐하우스’의 이솔희 감독이 보여줬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을’의 인생은 어떻게 파괴되는지.
링 안에 있는 모두에게 묻습니다. 계속 싸울 건가요. 싸움을 멈출 건가요. 분노가 향해야 할 당연한 곳은 어디인가요. 대답은 각자가 찾으십시오.
김재범 대중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