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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왜 ‘ㅁ’부터 썼냐면…”
“극단적 상황 속 누구 하나 ‘절대선’·‘절대악’도 아닌 묘사 흥미로워”
입력 : 2023-08-08 오후 12:09:29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장르’, 즉 영화가 담고 있고 또 그리는 얘기의 색깔을 말하는 단어 입니다. 사랑 얘기를 하면 멜로’, 괴신 얘기를 하면 공포’, 범죄와 긴장감을 담은 얘기를 하면 범죄·스릴러. 장르는 결국 영화가 담고 있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연출 방식에 다라서 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극히 예외가 있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예외의 경우입니다. 어떤 배우가 등장하면 그 배우의 캐릭터 해석 그리고 그 배우가 그 장면에서 자신의 대사를 어떤 느낌으로 내 뱉는가. 그 결정에 따라서 장르가 규정되기도 합니다. 그럼 그게 어떤 배우인가. 그게 중요합니다. 이 정도라면 다들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까지 장르를 규정 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 그 배우 자체가 결국 장르가 되고 그 배우가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감독이 연출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배우. 이병헌입니다.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입니다. ‘연기력하나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이 지구상에서 그와 대적할 수 있는 배우가 열 손가락을 넘어갈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것 역시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지점입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건 대한민국 영화계에 정평이 나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독의 그 어떤 주문도 완벽하게 100%이상을 소화합니다. 그럼 결과는 뻔합니다. 이병헌, 그는 결국 작품 자체가 돼 버립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시면 이병헌의 존재감에 전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꽤 오래 전 이병헌의 콘크리트 유토피아합류 관련 내용이 기사화 됐었습니다. 당시 영화계 모두가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일단 콘크리트 유토피아연출을 맡은 엄태화 감독. 전작의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작의 감성적 연출 방식이 재난 장르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맞아 떨어질까 싶은 우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우려는 흥행 필패 가능성까지 점쳐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의 완성도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언론 시사회까지 포함하면 제가 한 네 번 본 거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촬영 끝나고 개봉까지 좀 오래 걸렸는데, 오히려 그게 득이 된 것 같아요. 감독님이 진짜 후반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이신 티가 나더라고요. 제가 본 네 번 다 편집과 음향이 점차 진화한 게 느껴져요. 장르 자체가 사실 뭐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블랙 코미디 적인 요소가 많아서, 감독님과 정말 대화를 많이 하면서 디테일을 만들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이 이 영화에 합류를 결정한 건 오롯이 시나리오의 힘이었답니다. 평소에도 이병헌은 작품 제안이 오면 출연 결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글의 힘을 믿는 답니다. 정말 힘이 느껴지는 글은 너무도 편하고 쉽게 넘어간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그림도 전혀 안 그려진 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머리 속에서 공간이 펼쳐졌답니다.
 
대지진이 일어나고 아파트 한 채만 덜렁 남은 그 모습이 그려지면서 얘기가 펼쳐지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다음 페이지에 뭐가 있을까 두근두근 거렸죠. 특히 극단적 상황 속에서 누구 하나 절대선도 아니고 절대악고 아닌. 그런 사람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서로 규칙을 정하면서 살지만 그 안에서 또 갈등이 생기면서 각자의 밑바닥이 드러나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진짜 공포였고 재난이었어요.”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맡은 김영탁이란 인물은 재난 이후 홀로 남은 황궁아파트의 주민 대표. 이병헌이 맡은 배역이기에 평범한 인물이라고 판단하긴 쉽지 않습니다.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위해 대략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김영탁은 극중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점차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 취해 군림하는 권력의 상징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이유도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선은 이병헌을 통해 소름 끼치게 표현됐습니다.
 
사실 초기 시나리오에선 꽤 스트레이트한 인물로 그려져 있었어요. 근데 그런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인물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봤죠. 김영탁? 그냥 보통 사람이었고 또 루저에 가까운 인물이었어요. 어디서 리더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 집 하나 마련하려고 발버둥치던 사람이었는데. 너무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될까. 그 상황을 그려보려 노력했죠. 예상치 못한 변화로 신분이 올라서면서 맛보게 되는 권력욕. 그런 사람들이 맛을 보면 어떻게 될까. 그걸 집중해 봤어요.”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의 설명처럼 김영탁은 평생 한 번도 주목을 받아 본 적 없는 루저 같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주민 대표로 뽑힌 뒤 권력의 맛에 취해 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게 됩니다. 그런 김영탁의 모습. 이병헌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이 만들어 주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포스터에 자리한 이병헌, 아니 김영탁의 외모. 이병헌의 아이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공개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디테일까지 있습니다.
 
우선 외모적인 부분에선 앞머리 M자형 탈모 스타일이 떠올랐어요. 근데 영화 보실 때 자세히 보시면 후반부로 갈수록 양 옆 헤어가 곤두서요(웃음). 이게 계산을 좀 한 건데. 권력에 취해가면서 스타일도 좀 뭐랄까. 숫사자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평생 패배자로 살던 남자가 리더가 되고 완장을 차면서 변해가는. 눈빛도 보면 나중에는 핏발이 서 있어요. 그냥 미쳐 가는 거죠. 나중에 그 소리치는 장면에선 내가 저랬나싶을 정도로 좀 이상하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다들 무섭다고(웃음).”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실 꽤 큰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중심에 이병헌이 연기한 김영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밀을 모르고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알고 보면 더 소름 끼칠 몇 가지 포인트도 이병헌은 공개했습니다. 참고로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원작 웹툰을 전혀 보지 않고 이 작품을 임했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자체를 블랙 코미디로 설정하고 처음부터 달려 왔다네요.
 
이건 정말 큰 비밀이면서도 제가 감독님께 제안한 아주 디테일한 지점인데, 극중 초반에 주민 명부에 이름을 쓸 때 제가 김영탁을 쓰는데 밑에 받침인 을 먼저 써요. 그러면서 묘하게 머뭇거리는 느낌을 손으로 줬어요. 그때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그 장면부터 김영탁의 모든 게 설명이 되고 극 전체의 흐름이 좌우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실거에요. 여기서 더 말씀 드리면 스포일러라서(웃음).”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오는 9일 개봉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속 최고의 명 장면은 아마도 이병헌이 주민 잔치를 벌이는 과정 속에서 무대에 올라 부른 윤수일의 아파트일 것입니다. ‘아파트란 곡은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신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선 극 전체의 분위기 그리고 상징성 등과 맞물려 기묘하고 또 기괴한 느낌으로 연출이 됐습니다. 이병헌도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 장면을 굉장히 기대 했었답니다.
 
시나리오에서도 제일 궁금했는데, 완성 버전을 보니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었죠. 당연히 콘티에 있던 대로 촬영을 했어요. 굉장히 롱 테이크로 찍은 건데, 굉장히 신나는 노래인데 그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갑자기 과거 플래시 백이 터지고.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제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데.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 변화를 감독님이 원하셨어요. 이게 노래를 부르면서 찍어야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맞춰서 찍어야 했어요. 3번 정도 찍었나. 근데 정작 상영 버전에선 테스트 컷을 사용하셨더라고요. 하하하.”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연기의 화신또는 악마적 연기력이란 찬사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병헌입니다. 그가 연기를 하면서 그리고 연기를 통해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뭘까. 바로 보편성이랍니다. 배우가 작품을 통해 인물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삶을 그리는 것이고, 그것을 그리는 데 보편성을 잃는 다는 건 가장 큰 것을 잃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것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기에 자신의 연기에 좋은 점수를 대중들이 주는 것 같다고 합니다.
 
“‘영탁은 어떤 사람일까. 이 단순한 질문을 해봤죠. 삶의 무게에 짓눌린 우울한 가장이었어요.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그리고 가장 많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자 또 옆집에 사는 아저씨 같은. 전 늘 사람들을 대하면서 관찰을 좀 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이라기 보단 직업적으로서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이런 여러 질문이 모이면서 연기적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끌어다 모아 놓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면 끌어다 쓰는 거죠. 이번 영화의 김영탁도 그렇게 만들어 봤어요. 영화 재미있으실 겁니다. 많이들 보러 와주세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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