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 자체로 설득력이 되는 연기가 있습니다. 별다른 특별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이 생기고 ‘신뢰’가 생깁니다. 이건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기도 합니다. 노력을 한다면 가질 수도 있을 듯하지만 그것조차 천부적인 재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라 말해야 할 듯합니다.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일부 배우들이 이 지점에 속할 듯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뱅우들도 이 지점에 속하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믿음’과 ‘신뢰’를 주는 타입들이 있습니다. 잘생긴 것 같은데 특출 나진 않고, 뛰어난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고. 신체적 조건이 탁월한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굳이 설명하자면 ‘애매한’ 타입인데, 이게 바꿔 말하면 ‘새하얀 도화지’ 같은 또는 갓 지은 따뜻한 ‘흰 밥’의 느낌입니다. 무엇을 그려도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새하얀 도화지. 무엇을 곁들여도 그 자체로 맛의 베이스를 잡아주는 흰 밥 같은. 그런 배우들이 있습니다. 배우 정해인이 그런 배우들 중 한 명이라고 하면 반문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러지 못할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시즌2에서도 정해인은 여전히 ‘안준호’였습니다. 시즌1에서 시즌2로 오면서 바뀐 건 가슴에 달린 계급장. 일단 시즌1에선 ‘이등병’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즌2에선 ‘일병’입니다. 그리고 가슴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머리는 더 차가워졌습니다. 시즌1이 생각만 하고 행동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면, 시즌2는 생각은 짧게 그리고 행동은 더 과감히를 외칩니다. 정해인을 만나 나눈 얘기는 이러했습니다.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시즌1이 공개될 당시 ‘D.P.’를 본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PTSD 유발 콘텐츠’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군복무 당시의 정신적 후유증을 유발시킨다는 뜻에서 나온 감상평이었습니다. 당시 정해인은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실제 군 입대하는 과정을 전부 담아냈습니다. 머리를 깎고 보충대에 입소하고 이후 훈련소로 넘어가 자대 배치를 받는 과정까지. 일반 남성들이 군 입대에서 겪는 상황을 고스란히 그대로 똑같이 다시 한 번 경험한 셈입니다. 당연하지만 정해인은 현역 군필자입니다.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제가 08군번인데, 나름 개구리 군복 세대입니다(웃음). 시즌1 촬영 당시 진짜 기분 정말 이상했었어요. 남자들 꼭 한 번씩은 군대 다시 가는 악몽을 경험하잖아요. 전 그걸 현실로 받아 들이니 너무 이상했었죠. 후유증을 물어 보시는 데, 시즌1에서도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니 아무리 일이지만 기분 묘하죠(웃음). 그리고 자꾸만 제가 멜로하고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나름 멜로 경험이 많은데 이젠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요. 하하하.”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일단 시즌2가 막 공개된 뒤 만난 자리였습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이고 앞서나가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했습니다. 시즌1 당시에도 시즌2에 대한 상상은 전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시즌2가 공개됐습니다. ‘D.P.’ 시리즈에서 이제 정해인은 아이콘이자 상징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만약 시즌3 제작이 확정된다면 다시 한 번 합류를 결정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결정된다면 벌써 3번째 군 생활이 되는 셈입니다. 정해인은 진저리를 치면서 웃었습니다.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다른 건 모르겠고, 3번째 군생활이라고 하니 어휴(웃음). 우선 시즌3 얘기는 아직 생각도 할 시기는 아닌데, 만약 결정이 되면 감사할 거 같아요. 다시 ‘안준호’를 연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니. 힘들고 쥐어 짜는 고통이 많았던 현장인 건 맞는데 반대로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은 현장이었어요. 배우 입장에선 너무 감사한데, 감독님을 생각하면 좀 텀이 있었으면 해요. 공개 전까지 시즌2를 편집을 위해 무려 200번 가까이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좀 쉬셨으면 해요.”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D.P.’는 기본적으로 군 복무 중 탈영을 한 ‘탈영병’들에 대한 개인사와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부조리에 대한 실체를 고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안준호’가 녹아 들면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성장해 나가는 얘기로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즌2에선 계급도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올라선 안준호 입니다. 시즌1 마지막 에피소드 ‘조석봉 사건’을 겪은 뒤 심적으로 더 괴롭지만 분명 더 성장한 안준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D.P’는 결국 안준호의 성장 일기 같은 형식일 수도 있을 듯 했습니다.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감독님도 그런 지점을 많이 강조하셨고요. 그래서 이번 ‘D.P.’ 속 안준호를 연기할 때 보편적 군생활을 통해 경험한 것을 적용하면 안되는 순간들이 있긴 했었어요. 보편적으로 계급이 변화하면서 겪는 내적 외적 상황도 있지만 ‘D.P.’에서 중요한 건 ‘조석봉 사건’을 겪은 뒤 각각의 인물이 겪는 스트레스의 감정선이었어요. 시즌2는 그래서 첫 화가 1화가 아니라 7화에요. 시즌1의 마지막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출발이거든요.”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D.P.’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안준호 그리고 한호열의 ‘남남 케미’입니다. 주거니 받거니를 하면서 극 흐름을 이끌어 가는 두 사람은 ‘바늘과 실’처럼 한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호흡이 끝내줍니다. 때문에 시즌1은 일종의 ‘버디물’로도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즌2로 이어지면서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더 커지면서 이 같은 색깔이 크게 줄어 들었단 지적도 있습니다.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그 부분도 어느 정도 동의해요.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가 시즌1에 비해 덜하긴 해요. 그런데 시즌1의 ‘조석봉 사건’을 눈 앞에서 겪은 두 사람이 다시금 우왕좌왕하면서 우당탕거릴 수 있을까 싶어요. 선임인 한호열이 실제 나이로 보면 겨우 20대 초반일 거에요. 그런 친구가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는데, 안준호는 오죽하겠어요. 그리고 시즌1 마지막 쿠키가 김루리 일병의 총기난사로 끝이 나잖아요. 그 얘기를 안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얘기로 갈 수 밖에 없으면서 콤비 플레이가 줄어들었죠. 전 충분히 공감되고 납득이 됐어요.”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정해인은 시즌2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인물로 ‘오민우 준위’를 연기한 정석용 배우를 꼽았습니다. 정석용 배우는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쉽게 말해 ‘당하는 쪽’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D.P’ 시즌2에선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이 ‘군대’라는 시스템이 갖춘 고질적이고 변화되지 않는 모습, 그걸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해 만들었답니다. 정석용 배우가 연기한 ‘오민우 준위’는 그래서 남자들에겐 가장 섬뜩한 인물로 다가옵니다. 인간미 자체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진짜 제일 충격적인 모습이었어요. 실제 그런 분들이 예전이나 지금에도 어느 군대를 가나 있어요. 동의하시죠(웃음). 많은 씬을 같이 촬영한 건 아닌데, 어느 날 촬영에 들어가는 데 저 멀리서 걸어 오시는 데 배우가 아니라 닮고 달은 군인이 오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제일 소름이 돋았던 게 ‘손자랑 레고해야 하는데….’란 대사에요. 그냥 저 사람에겐 이게 겨우 일이구나. 그냥 오민우 구나. 그게 느껴지니 너무 소름이 돋아서. 진짜 섬뜩했어요.”
'D.P. 시즌2' 스틸. 사진=넷플릭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에게도 물어본 질문이었습니다.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극중 시간으로 1년 좀 넘는 시간을 군인으로 살았던 정해인입니다. 그리고 실제 인간 정해인으로서는 2008년 군에 입대해 만기 전역을 한 상태였습니다. 다 합치면 3년 조금 안되는 시간을 군인으로 산 정해인입니다. 그 기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군 내부 부조리. 부조리 가운데 가장 직격탄이 될 수 있는 폭력.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전, 그리고 훨씬 더 이전에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도대체 군대와 폭력의 부조리. 왜 끊어지지 않는 걸까요. 정해인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배우 정해인. 사진=넷플릭스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군대란 집단이자 단체에겐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어요. 일단 너무 폐쇄적 이잖아요. 보안 문제가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구성원 간에 당연히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딪칠 수 밖에 없고. 근데 이게 비단 군대만의 문제일까요. 사회에 나오면 여러 조직과 단체에서도 비슷하다 생각해요. 어떤 관계 어떤 이유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고 해도 ‘D.P.’ 속 부조리의 실체는 반드시 존재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근절해야 합니다. 반드시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