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두렵습니다. (중략) 정년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하는 건지 생각하면 겁도 많이 납니다. 뒤늦게 선생님 되는 것을 응원해주신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보면서 새벽까지 잠을 설쳤습니다."
세상을 떠난 서이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행사였던 9·4 공교육 멈춤의 날 아침.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입장과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동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출근 준비할 때 항상 틀어놓는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교사들의 연가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될 것을 우려해 재량휴업을 결정한 한 교장선생님의 인터뷰가 소개됐습니다. 앞서 전국의 500여곳의 학교가 재량휴업을 결정했으나, 교육부가 학교장 재량휴업을 실시하면 파면과 고발 등 중징계 할 방침을 알리자 470여곳이 재량휴업 의사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사망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교대는 고인의 모교다. (사진=뉴시스)
교육부가 재량휴업을 결정한 교장을 징계해, 혹여라도 파면이라도 된다면 이들은 평생 연금도 못받게 됩니다. 수십년간 교육현장에서 일하며 쌓아온 경력과 노고가 한순간에 부정되는 동시에 노후생활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를 우려한 상당수의 학교는 재량휴업 방침을 접은 것이죠.
재량휴업을 결정한 정용주 천왕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학교장으로서 법적인 권한 내에서 교사 부재에 따른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호하고, 교육과정 파행을 막기 위해 재량휴업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투입할 강사들도 연가, 병가를 낸 교사들의 입장을 지지하겠다고 해 대체교사를 구할 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라고 징계로 인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뒤늦게라도 교사가 되는 것을 응원해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참을 잠못 이뤘다고, 인간적 고뇌를 밝혔습니다.
전국의 470여곳이 징계가 두려워 재량휴업 방침을 철회한 것과 달리 소신과 신념을 바탕으로 재량휴업을 결정한 정용주 선생님의 용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익명 인터뷰도 가능했을텐데 실명으로 신분을 밝히고, 재량휴업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상황 등을 조곤조곤하면서도 분명히 설명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움직였을 것 같습니다.
교사들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집단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의 교육권이 침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우려도 불식시켜줬습니다. 실제로 그날 아들이 다니는 2학년 4반에는 10명의 학생이 등교했으며 옆반인 2학년 5반에는 등교한 학생이 5명에 불과해, 합반 수업했다고 합니다. 사실 수업이 아닌 자습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교사들이 이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고했지만 결국 별 수 없이 예고대로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은 것이죠. 그럴바엔 정용주 선생님의 취지대로, 재량휴업을 결정한 것이 현명한 선택 같습니다. 정상적인 수업을 하고, 방학을 하루 늦게 하는 식으로 수업일수 전체를 채우면 되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점점 더 비겁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불합리한 현실과 불의에 대한 저항감은 줄어들고, 내 몸 하나만 편하고 보려는 비겁함과 나약함을 나날이 깨닫습니다. 정용주 선생님의 소신있는 결정과 목소리에 나날이 비겁해지는 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