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초콜릿 원액이 돌하르방 틀로 떨어집니다. 가로 9개, 세로 4개, 도합 36개의 틀로 이뤄진 돌하르방 틀에 36개의 초콜릿이 담겨집니다. 이 초콜릿 틀에서 분리된 돌하르방이 하나씩 줄지어 라인을 통해 이동합니다. 지난 13일 방문한 제주 애월읍 제키스 공장에서는 하루에 15만개(낱개포장 기준)의 초콜릿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제주와의 입맞춤'이라는 의미를 사명에 담은 제키스는 제주 제과시장 1위 업체입니다. 제키스 초콜릿과 쿠키 등은 제주 공항 면세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계에서 돌하르방 초콜릿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제주도 출신의 정기범 제키스 대표는 경기도에서 유럽산 고급 초콜릿을 유통하면서 초콜릿 시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본이나 하와이의 하와이안호스트, 생초콜릿 로이스가 지역제품으로 출발해 인지도가 높아지며 세계시장까지 진출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고향인 제주의 특산물을 이용하면 세계적인 초콜릿을 만들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바로 고향으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정 대표는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서 나오는 초콜릿은 카카오분말만을 이용하는 수준"이었다면서 "감귤이나 한라봉 같은 제주특산물 등을 이용해 초콜릿을 업그레이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6년 회사를 설립했고, 2012년 제키스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제주 제과업체 1위로, 귤과 백년초, 녹차, 메밀 등 제주산 원물을 이용해 초콜릿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세계적인 초콜릿은 카카오와 카카오버터의 품질로 좌우되는데, 제키스는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면서 "제키스의 감귤초콜릿은 그들이 만드는 오렌지 초콜릿보다 향도 좋고 오래가며 훨씬 맛있다"고 자신했습니다.
2010년대 이후 한류바람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며 해외 관광객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제주도가 주요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제주 초콜릿 시장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제키스는 당시 초콜릿 시장이 경쟁이 치열했지만 다른 업체처럼 가격경쟁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격을 지키면서 제과설비 라인에 투자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던 것이 시장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현재도 온·오프라인 시장 가격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가격과 품질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제키스의 정기범 대표가 제키스의 대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키스는 감귤을 이용해 감귤 초콜릿을 만드는데요. 알맹이가 크거나 아주 작은, 또는 껍질에 흠집이 있는 비(非)상품을 분말로 이용합니다. 감귤 하나로 초콜릿 4개 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연간 2억~3억원 가량의 감귤 분말을 매입해 초콜릿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제주도의 감귤을 이용하는 업체로서 1차 가공물과 관련한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그는 "제키스같은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제품을 개발·생산·판매하기 위해서는 감귤에 대한 1차 가공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키스 같은 중소기업들이 감귤 원료 가공에 뛰어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주 물가에 대해선 제주 초콜릿 전문 브랜드로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해외 여행이 불가능한 까닭에 제주도에 관광객 몰리면서 렌트카 가격, 외식물가 등이 올랐는데요. 제키스 역시 이같은 현상이 달갑지 않습니다. 정 대표는 "제주가 관광객들로부터 터무니 없는 가격을 받으려고 한다면 시장에서 외면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관광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제안했습니다.
제키스는 2011년 70억원의 매출에 이어 2016년 89억원을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곡선을 그렸습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감염 우려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며 면세점이나 수출 등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이후부터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매출이 복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기존에 거래하고 있던 미국과 대만 시장을 넘어 중국과 일본, 베트남, 러시아 등과 신규 거래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회사는 러시아 수출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세계 초콜릿 소비량이 1위일 정도로 큰 시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제키스는 현재 러시아 향 1차 선적을 진행했고, 2차 수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감귤과 마늘이 들어간 샌드형 샤브레 쿠키와 초콜릿 미니 파우치 제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인천공항 면세점 론칭도 준비 중입니다. 올해 해외 매출은 2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회사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2024년에는 50만 달러 이상 수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제주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