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로맨스 혹은 왈가닥 또는 코미디 그리고 나머지는 드라마적인 스토리. 배우 신혜선의 필모그래핀는 대충 이런 흐름입니다. 여배우로서 이런 흐름이 가장 평범하고 또 트렌드에 맞춰 가는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혜선에겐 뭔가 좀 부족한, 적당한 표현을 빌리자면 ‘여전히 배가 고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그를 채워줄 강한 게 필요해 보였습니다. 바로 직전 출연 영화 ‘타겟’에서 그는 잔인한 빌런에게 당하고 또 당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을 연기했습니다. 참고로 신혜선은 여배우치고는 상당히 큰 피지컬의 소유자입니다. 큰 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체격이 실제로 보면 웬만한 남자 배우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여배우에겐 실례가 되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는 이런 자신만의 차별성을 제대로 살려보길 원했습니다. 작품이 끝나고 또 작품이 시작될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끈한 액션’을 해보길 원하다는 바람을 여러 번 내비친 바 있습니다. 그게 제대로 전달이 된 듯합니다. 신혜선은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역대 최악의 빌런으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최악의 악인 ‘한수강’을 떄려 잡는 ‘소시민’으로 등장합니다. 극중 이름이 ‘소시민’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이름을 빌려서 이 세상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일종의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신혜선을 통해 그려진 ‘소시민’은 결정적으로 판타지로만 끝을 맺지는 않습니다. 그의 바람처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숨은 바람처럼.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소시민’이란 점을 알려줍니다. 용기를 줍니다. 신혜선의 공중 뒤 돌려차기 한 방. 멋지게 들어갑니다.
배우 신혜선. 사진=마인드마크
‘용감한 시민’은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입니다.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또 액션 장르입니다. 단순한 액션이 아닌 응징에 대한 서사가 담긴 화끈한 액션입니다. 이런 장르와 이런 흐름.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정말 오랜만입니다. 무엇보다 여성이 주인공인 통쾌한 방식의 응징 액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전통적인 국내 상업 영화 흥행 트렌드 공식에선 존재하지 않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신혜선은 결코 이 작품을 놓칠 수 없었답니다.
“여자 배우로서가 아니라 남자 배우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액션에 대한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정도로 화끈하고 통쾌한 액션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제가 관객으로서 본 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죠. 그런데 제가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절대 놓칠 수 없었죠. 서사 자체도 너무 단순명료하고 통쾌했죠. 만화적인 구성과 판타지가 강한 이 작품을 안할 이유가 없었어요.”
배우 신혜선. 사진=마인드마크
신혜선이 연기한 ‘소시민’은 극중 무대가 되는 ‘무영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 정교사 발령을 위해 ‘봐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을 해야 하는 말 그대도 소시민. 하지만 그의 실제 정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유력할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던 권투 국가대표 출신. 쉽게 말해, 평소에는 힘을 숨기고 가냘픈 여성 캐릭터로서 ‘위장’을 하지만 어떤 계기로 각성을 한 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고양이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일종의 히어로 캐릭터인 셈.
“’용감한 시민’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소시민’이 평소에는 힘을 숨기고 평범하다 못해 소극적인 인물 인척 하는 것이었죠. 그런 소시민이 어느 순간 각성을 하면서 힘을 폭발시키고, 그 순간부터 가면을 쓰면서 인물의 대비가 뚜렷하게 오는 걸 보여줘야 했어요. 눈에 보여지는 지점이 아주 명확한 영화였어요. 뭔가 설명을 해야 하고 숨은 감정 혹은 어려운 관계 등이 없이 그냥 보여지는 대로, 그 느낌대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액션을 하는 오락성이 강한 설정. 이런 만화적인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배우 신혜선. 사진=마인드마크
‘만화적 설정’이란 표현, 충분히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설명이었습니다. ‘용감한 시민’에서 시민은 여성, 한수강은 남자. 아무리 영화적 설정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사실 일대일 대결에서 균형점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극중 한수강은 일반적인 미성년자 고등학생이 아닌 엄청난 피지컬을 소유한 성인 캐릭터. 그런 남자와 여성 캐릭터인 시민의 대결은 보는 맛과 화끈함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걸 균형감 있게 표현하려면 신혜선의 운동 능력은 필수입니다.
“일단 제가 좀 크잖아요(웃음). 키가 크니까 액션이 멋지게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 제가 발레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리를 찢어 놓은 게 이번에 써 먹을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길거리 ‘몸쓸남’ 캐릭터로 나오신 남자 배우 앞에서 다리를 걷어 올린 자세. 그거 CG아닙니다(웃음). 근데 사실 제가 좀 몸치에요. 그래서 액션 스쿨에 갇혀서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도 그때 무술 감독님이 말씀해 주신 게 ‘키가 커서 유리하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덩치 덕을 좀 봤어요. 하하하.”
배우 신혜선. 사진=마인드마크
신혜선은 ‘용감한 시민’에서 자신이 응징해야 할 ‘한수강’을 연기한 이준영과 가장 많은 호흡을 맞췄습니다. 이준영은 이번 영화에서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를 증명이나 하는 듯 ‘악마’ 그 이상으로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 참고로 놀라웠던 점은 신혜선과 이준영의 관계였습니다. 8살 연상인 신혜선의 아버지 그리고 이준영의 외삼촌이 둘도 없는 절친이란 점. 두 사람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됐답니다.
“저도 아버지한테 듣고 너무 놀랐죠(웃음). 그런 관계가 아니어도 준영이가 정말 착한 친구에요. 근데 이번에 너무 악한 인물을 연기해서 현장에선 진짜 힘들어 했어요. 특히 손숙 선생님한테 나쁜 짓을 하는 그 장면 찍을 때는 현장에 없었는데 전해 듣기로는 그렇게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영화 보고 나니 ‘저렇게 잘 해놓고 뭘 또 울어’라는 생각도 들어서(웃음). 근데 저랑 할 때는 진짜 너무 눈이 무서워서. ‘얘 뭐야’ 싶은 두려움까지 생길 정도였어요. 하하하. 정말 연기 잘하는 매력적인 배우에요.”
배우 신혜선. 사진=마인드마크
인터뷰 내내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을 드러내는 신혜선이지만 실제 성격은 지극히 내향적이라며 웃습니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집순이’랍니다. 그래서 바로 직전 전작 ‘타겟’에서의 캐릭터가 오히려 더 몰입이 잘 될 정도였다는 신혜선입니다. 하지만 ‘용감한 시민’을 통해 자신도 드러내지 못하는 그리고 느끼지 못했던 판타지를 충족시켜 나가는 것 같아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웃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불의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만약 본다고 해도 실제로 나설 용기는 저도 없을 것 같아요. 만약 보게 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할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몰입이 잘 됐던 것 같아요. 세상 사람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일상을 살아 가잖아요. 그런 억누름을 저라고 없겠어요. 근데 이 영화를 통해 그 억눌림을 푸는 판타지를 제대로 맛 본 것 같아요. 너무 시원한 대리만족을 한 것 같아요. ‘용감한 시민’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느끼는 그런 후련함을 꼭 한 번 느껴 보셨으면 해요. 아주 시원하실 겁니다. 제가 보장합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