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개인적으로 세상에 ‘100% 확신한다’란 말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의 어떤 사건 또는 상황이든, 변수는 무조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무조건 100% 확신할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극중 등장하는 나쁜놈, 즉 빌런. 이 캐릭터에 대해 관객들은 극장 문을 열고 나오면서 딱 한 마디를 무조건 하게 될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이런 개XX 같으니’라고. 정말 도저히 문자로, 아니 상상으로도 표현이 안되는 천하의 나쁜 놈이고 또 죽일 놈입니다. 그냥 나쁜 짓을 넘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니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짓만 골라서 하는 놈이 나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니 국내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로 나쁜 놈이 등장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딱 까놓고 말해서 ‘살인’(사실 극중에서도 직접적인 살인은 없었지만 ‘그 놈’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을 제외하면 이 캐릭터의 행위는 악마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참고로 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 영화에 대해 단 1의 정보도 없이 관람을 했습니다. 사실상 블라인드 관람에 가까운 스타일로 영화를 봤습니다. 포스터만 보면 연애 중인 남녀 커플의 사랑 싸움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쯤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최근 몇 년 동안 몸살을 앓은 사회 문제가 이 영화 한 편에 총 집합돼 있습니다. 물론 극중 그 나쁜 놈, 아주 화끈한 응징을 당합니다. 영화 마지막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될 것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첫 인사로 “욕이 나올 것 같다”란 말에 “각오하고 있습니다”라며 강아지 눈빛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배우 이준영이 그려낸 ‘용감한 시민’ 속 한수강.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곤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작품 속 차이가 너무 넓었습니다.
배우 이준영. 사진=마인드마크
이준영, 아직은 낯선 이름일 수 있습니다. 2014년 아이돌그룹 유키스 새 멤버로 합류,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단역 조연 그리고 주연까지. 차곡차곡 발판을 밟고 올라왔습니다. 가장 익숙한 그의 최근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럴센스’입니다. 극중 색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슴눈의 남자로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작품부터 묘하게 악역 스타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마스크걸’에서 수위 높은 사악한 인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용감한 시민’ 속 ‘한수강’에 비하면 예고편 수준도 안될 정도입니다.
“제가 좀 세게 나온 작품을 많이 기억해 주시고 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연이은 악역이라 부담이 없던 건 아닌데, ‘한수강’은 구체적으로 캐릭터의 서사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도전해 볼 수 있었죠. 어떻게 하면 더 이상하게, 더 기괴하게 보일까. 그런 점만 고민하면서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어요. ‘마스크걸’이나 ‘D.P.’에선 그저 양아치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그냥 순수하게 ‘나쁜놈’ 딱 그것만 드러내려 했죠.”
배우 이준영. 사진=마인드마크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이준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용감한 시민’ 속 한수강의 악행이 일반적인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간 수준으로 묘사가 됐고 표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크린 속 ‘한수강’이 스크린 밖 ‘이준영’으로 보는 데 꽤 어려움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시선의 혼란에 이준영도 민망해 하면서 ‘충분히 이해한다’고 멋쩍어 했습니다. 그는 본인도 이 정도로 악한 인물은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극중 제 연기를 보신 뒤 저의 이런 말을 들으시면 믿으실 지 모르시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웃음). 매 순간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너무 컸어요. 매번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이 절 꼭 안 주시고 ‘이건 일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라고 해주셨어요. 정말 힘들었던 건 손숙 선생님을 괴롭히던 장면인데, 김밥 행상 할머니로 나온 선생님의 김밥을 전부 뒤 엎고 거기다 담배를 끄는 장면을 찍는 데, 진짜 죽을 것 같았어요. 사실 그때 제 친할머니가 너무 편찮으셨는데, 그 생각에 진짜 못하겠더라고요. 저 구석에 펑펑 울고 있는데 선생님이 ‘고생이 많다’라며 저 안아 주시는데 저 그때 오열할 뻔 했어요. 감독님이 ‘그래도 일이다’라고 하시면서 ‘가장 나쁘게 해봐라’ 하셔서 ‘한 방에 가자’란 생각에 땅에 쏟아진 김밥에 담배를 껐는데. 어휴 진짜. 그 장면 잘 보시면 제 눈이 되게 충혈된 채 나와요. 그거 울고 나서 찍은 거에요(웃음).”
배우 이준영. 사진=마인드마크
‘용감한 시민’ 속 한수강의 기본적인 활동 무대는 학교입니다. 그는 극중 무대인 무영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최강의 빌런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최근 들어 교권 추락 문제와 함께 가장 큰 사회적 이슈로 주목되는 학교 폭력 사건이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이기도 합니다. 아직 20대 중반이라 학창 시절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을 듯 했습니다. 당시의 기억과 영화 속 연기를 오버랩 시켜 어떤 느낌이었고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실 많이 아시는 건 아닌데, 제가 고등학교 중퇴를 했어요. 검정고시 출신이거든요(웃음). 학폭 문제에 많이 아는 건 아닌데, 이번 영화를 통해 너무 충격을 받긴 했어요.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 그리고 그걸 방관하는 사람들. 너무 충격이었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저희 영화를 보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해요. 참고로 중학 동창들을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친구들이 ‘너 혹시 우리 몰래 누구 괴롭히고 그랬던 거 아니냐’고 놀려서 당황하기도 했어요. 하하하.”
배우 이준영. 사진=마인드마크
악역도 악역이지만 ‘용감한 시민’에서 이준영의 액션 수위도 상당했습니다. 그저 나쁜 짓만 하는 악역이 아니라 액션을 하는 악행이라 준비 과정도 보통이 아니었을 듯했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선 주인공 ‘소시민’으로 등장한 신혜선과 장시간에 걸친 격투 액션을 소화했습니다. 이 장면을 찍을 때 거의 대부분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액션 수위입니다.
“그나마 제가 아이돌 출신이고 춤을 춰서 몸 움직임에 이해도가 높다고 허명행 무술 감독님이 많이 칭찬해 주셨어요. 우선 혜선 누나는 복싱 기반이지만 전 무에타이를 베이스한 액션이거든요. 일주일에 거의 4~5일은 액션 스쿨에서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몇 달 준비했어요. 마지막 액션에선 거의 90프로 이상은 제가 소화했어요.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20대의 마지막을 좀 화끈하게 멋지게 장식하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시면 카메라에 잡히는 제 표정을 주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하.”
배우 이준영. 사진=마인드마크
이준영에게 ‘용감한 시민’의 ‘한수강’을 넘어설 악역 연기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준영도 잠시 생각을 하더니 손사래를 쳤습니다. 악행도 악행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멘탈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악인 중에 악인이었기에 ‘이 보다 더 센 캐릭터’를 만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은 ‘한수강’ 그리고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용감한 시민’을 통해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이 주는 ‘좋은 선물’을 꼭 얻어 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이보다 더 센 배역이 있을까요. 시사회에 극중 제가 괴롭히던 고진형을 연기한 배우 박정우 형이 왔어요. 현재 군복무 중인데 휴가를 나와서 왔거든요. 그때도 만나서 서로 2~3분 정도 끌어 안고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것 보단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 힘들게 찍은 영화인데 많이들 봐주셨으면 해요. 모두가 각자 비겁하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순간이 있으실 거에요. 그런 순간들에 상처 받은 기억이 있다면 ‘용감한 시민’을 보시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꼭 받으셨으면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