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기꾼 얘기로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식에 단톡방도 분주합니다. 일부는 피해자가 미련하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의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고 살아야 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겁니다. 저신뢰 사회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입니다.
저도 크고 작은 일로 사람들에게 속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배신감은 물론이고 나에게 접근한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하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속았던 일입니다. 당시 세 명의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제게 접근했습니다. 저 하나를 속이기 위해서 세명이 짜고쳤을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죠. 특히 자신의 경험과 상황이 겹쳐 오판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때는 대학교 3학년 가을이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자신을 모 채널 작가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드라마를 준비 중인데 요새 대학생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며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나중에는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고도 했고요. 저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대답해준 덴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처럼 질문을 해댔기 때문입니다. 당시 동아리 팀원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10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물론 거절하고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대답해준 100명 덕에 다큐를 만들 수 있었어요. 받은만큼 베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후 상황을 요약하자면 제게 인터뷰 약속을 잡은 그는 약속 시간 30분 전에 자신이 갈 수 없으니 막내 작가를 보내겠다고 했고, 장소에 도착하니 제 다음 타자로 ‘심리상담사’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심리상담사와 막내 작가는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더니, 급기야 막내작가는 자신을 상담해줄 수 있냐고 심리상담사에게 요청했습니다. 저한테도 꼭 같이하자고 권유하면서요. 당시 빼곡한 일정으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거절하다가, 함께 공부를 하자는 제안에 승낙했습니다.
세 번 정도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됐는데요.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그쪽에서 먼저 그만하자고 해서 다행히 사이비종교로 빠지진 않게 됐습니다. 성경을 매개로 상담을 진행할 거라면서 성경공부를 했는데요, 며칠 후 친구가 "너 그거 분명 사이비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다며 네이버에 ‘성경상담’을 검색하니 온통 그 종교 이야기밖에 없더군요.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성경상담이 지식백과에도 등록이 돼 있네요. 키워드 정화작업이라도 한 걸까요? 그땐 분명 없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충격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서로 모른척을 하면서 제게 접근했던 겁니다. ‘신’과 같은 종교적인 얘기도 전혀 꺼내지 않아서 더 의심하지 못했어요.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연간 3만명에 달합니다. 전화로 하는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3만명이라는 이야깁니다. 피해자가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나는 절대 안 넘어갈 거야’라는 확신이 제일 무서울지도요.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