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찾아보니 ‘잔심’(殘心)이라 합니다. 이 말, 검도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검도는 분명 격술(術)입니다. 검(劍)을 들고 하는 격술이라고 하면 맞을 듯합니다. 검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카타(型)입니다. 이건 태권도로 치면 품새 정도로 보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검도의 유형인 ‘대련’입니다. 검도의 대련은 기검체일치, 즉 호흡과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것. 그걸 통해 잔심이 뒤 따르도록 올바르게 타격해야 하는 것. 그것이 검도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잔심, 일격을 가한 뒤 힘을 풀고 편안히 있으면서도 다음에 일어날 상대와 나의 변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주의를 기울인 상태. 그것이 바로 잔심입니다. 이렇게 많은 그리고 꽤 심오한 흐름의 검도. 그걸 알고 본다면 영화 ‘만분의 일초’는 단순히 검도를 소재로 한 흥미롭고 색다른 결의 서사가 아닌 검도 그 자체의 본질이 추구하는 그 이상의 무엇을 담아낸 관념의 그릇처럼 보였습니다. 관념, 즉 생각 다시 말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떤 형태가 있습니다. ‘만분의 일초’는 그걸 정확하게 형상화 시켰습니다. 이런 영화, 정말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도, 다른 그 어떤 스포츠와 달라 보입니다. 검도 자체가 현재는 스포츠에 개념에 더 맞아 들어가 있지만 이상적인 해석으로 들어가면 ‘수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검도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수행자의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스포츠의 그것을 닮은 자기와의 싸움, 육체적 고통과 그 이상을 넘어선 무엇을 갈구하고 갈망하는 지점. 검도는 좀 달라 보였습니다. 잡념 또는 상념이라 불리는 그것을 지워 버리는 정신 수양. 그걸 위한 묵상의 단계가 검도 수련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듯합니다. ‘만분의 일초’ 자체가 그 단계에서 오는 모든 걸 담아냈습니다. 검도가 지니는 무념무상, 즉 본질에 대한 질문처럼 다가옵니다. 주인공 재우(주종혁)가 그 과정 속에서 깨닫고 도달하는 지점. ‘만분의 일초’ 속에서 느끼고 넘어서는 잡념과 상념 너머에 있는 자신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수행의 과정입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는 몇 십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게 된 세계 검도 대회에 참여하는 국가대표 선발전 과정. 그 과정에 대한 부분만을 집중합니다. 재우는 국가대표 감독의 추천으로 선발전 후보에 합류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도장에 합류합니다.
도장에 모인 선수들은 총 3주간 합숙을 합니다. 그 과정이 불교의 수행자들과 비슷합니다. 속세와의 연을 모두 끊고 시작합니다. 휴대폰은 당연합니다. 개인 물품 소지도 불가능합니다. 오롯이 합숙 과정에서 본인이 감당해야 할 훈련만이 존재합니다. 도장에 합류한 후보들은 3주 동안 여러 훈련 그리고 대련을 통해 토너먼트식 서바이벌 형태로 우열을 가리며 생존과 탈락의 갈림길에 매일 내몰립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재우 역시 검도에 모든 걸 건 후보생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장에 모인 모든 후보생들 그리고 코치와 감독까지 인정하는 자타공인 최고 실력자 태수(문진승). 재우의 눈과 마음 모든 것이 태수를 겨냥합니다. 몸이 흔들리니 마음이 흔들립니다. 모든 게 흔들리니 ‘잔심’이 이뤄질리 만무합니다. 재우의 서바이벌 생존 여부, 불투명합니다. 재우는 흔들립니다. 대표 선발전 탈락 여부가 그를 흔드는 게 아닙니다. 태수의 존재가 거슬립니다. 태수에 대한 분노 때문입니다. 분노의 배경, 재우의 숨겨진 가정사입니다. 태수는 재우의 불행했던 가정사의 원인으로 존재합니다. 재우가 태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바로 그 때문입니다. 태수 역시 재우를 통해 그 분노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태수 역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검’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 역시 ‘검도’를 통해 ‘잔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두 사람의 충돌과 두 사람의 대결, 검도의 목적과 이유와 존재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눕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검의 방향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내면 속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향한 ‘잔심’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둘의 마지막 일격과 타격, 그리고 이어진 검도를 통한 본질.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만분의 일초’는 찰나의 순간을 통해 이뤄지는 검도의 형태적 본질을 추구하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주의 깊게 바라보면 이 영화 속 ‘검도’는 그저 소재에 불과합니다. 장식일 뿐입니다. 검도에서 사용하는 검, 죽도를 들고 휘두르며 타격하는. 그리고 그 타격에 따른 호쾌한 타격음. 이 모든 것은 흔들리는 재우의 상념 그리고 그 상념에 반응하는 태수의 상념. 그 두 가지 상념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감정의 격돌일 뿐입니다. 두 사람은 ‘검’을 통해 ‘길’(도, 道)을 찾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고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줄 뿐입니다. 그 과정이 구태의연한 말과 호소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그저 ‘검’을 통해 대화를 하고 ‘검’을 통해 공감하며 ‘검’을 통해 답을 내놓고 ‘검’을 통해 마침내 길을 찾습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만분의 일초’는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앞서 언급한 검의 대화로만 구성합니다. 무협지 속 고수들이 사용하는 칼의 대화처럼 재우는 각각의 관문을 넘어서는 과정 속에서 검을 통해 분노와 고요 상념과 잡념 이해와 공감 그리고 마침내 궁극의 목적인 외형의 나와 내면의 내가 더해지는 ‘합일’에 이르게 됩니다.
러닝타임 내내 별다른 대사가 없습니다. 재우와 태수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호흡과 표정 그리고 호쾌한 기합 및 검과 검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타격음. 이 모든 게 ‘만분의 일초’ 속 감정 전달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감정은 순식간에 극중 모든 인물들에게 빨려 들어갑니다. 감독의 세밀한 감정 재단이 유려하고 빼어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모술수’ 권민우 변호사로 등장한 바 있는 주종혁이 주인공 김재우를 연기했습니다. 주종혁이 표정만으로 드러내고 만들어 버린 재우의 모든 것이 관객이 모든 것을 뒤흔들기에 차고 넘칠 정도입니다.
재우가 느끼고 또 안고 있던 마음 속 분노와 응어리. 그걸 풀어내는 과정.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만분의 일초’가 감독의 의도대로 말이 아닌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 낸 가능성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의 방식은 영화가 그려낼 수 있는 대화의 또 다른 영역을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합니다. 국내 독립영화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이 이 ‘만분의 일초’에 담겨 있습니다. 개봉은 오는 1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