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합니다. 김재규는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습니다. 그는 사형 직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라며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18년 철권 통치가 막 내리고 억눌렸던 민주화의 바람이 봇물 터질 순간이 왔습니다. 그 시기 세상은 ‘서울의 봄’을 꿈꾸며 다가올 새 시대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국민들에겐 희망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였습니다. 박 대통령 서거로 어수선한 정국,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혼란한 정국 속 빠르게 머리를 굴립니다. 판을 읽습니다. 평소 가슴에 품은 야욕을 현실화 시킬 뜻을 스스로 관철시킵니다. ’10.26’을 조작합니다. 박 대통령 서거 당시 현장에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그를 타깃으로 삼습니다. 평소 자신의 행보에 불만을 드러낸 상관 정 총장을 제거할 뜻을 품습니다. 하지만 계엄사령관이자 직속 상관인 정 총장을 제거하는 건 그 자체로 반란입니다. 계엄령 아래에서 계엄사령관 구속은 그 자체로 반란입니다. 그는 결국 새롭게 자리에 앉은 대통령 그리고 국방장관을 압박해 계엄사령관 구속 제가를 요구합니다. 물론 뜻대로 이뤄집니다. 이 과정,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 치욕이자 진일보의 기회를 스스로 구겨 버린 12.12 신군부 군사 반란 사건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그리고 그들이 주축이 된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 이들은 혼란한 정국 속 대한민국을 집어 삼키고 권력을 찬탈합니다. 2023년 지금도 이어지는 정치권의 진영 논리, 그리고 현 정부가 쏟아내는 이념 논리. 그 시작이 바로 12.12입니다. 단 9시간 동안 이뤄진 그 날의 긴박했던 순간. 대한민국은 권력의 괴물이 잉태되는 순간을 목도합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몇 사람의 일화. 영화 ‘서울의 봄’입니다.
‘서울의 봄’은 10.26부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직전 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 수 많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은 무력으로 진압합니다. 같은 해 9월 신군부 세력 수장 전두환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11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12.12 신군부 군사반란의 마침표가 찍힌 순간입니다. 그리고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신군부 반란 세력 주축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하나회는 해체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란 괴변으로 자신들의 반란을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끔찍한 수준의 괴변인 이 발언, ‘서울의 봄’은 이 말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국가 주요 요직을 거머쥔 그들은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가 돼 2023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묻습니다.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아니면 실패한 반란군인가.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누가 봐도 신군부 세력 그리고 당시 그들을 막아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3인의 대립 관계를 정공법으로 그려 나갑니다. 물론 영화는 역사의 재현으로 서사를 끌고 가진 않습니다. 가상의 캐릭터로 인물을 잡아내고 그들이 그날 겪은 사건을 시간대별로 구성해 쌍방간 그리고 ‘피아’간 대립했던 무력과 야욕 신념의 그림자를 따라갑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일단 영화입니다. 등장 인물들 모두 가상의 인물로 배치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고 경험하고 배웠던 모두가 압니다. 누가 누가인지 눈에 들어옵니다. 신군부 세력 수장이자 10.26 수사 책임자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은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모든 정보를 자신에게 일원화시키며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합니다. 대통령 서거로 계엄령 선포 상황에서 계염사령관 정상호(이성민) 육군참모총장은 이태신(정우성) 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합니다. 군 내부 최고 요직 중 한 곳인 수도경비사령관을 ‘비 하나회’ 출신으로 메우며 전두광 일파의 독주를 견제하려 듭니다. 이 상황에서부터 전두광은 정 총장의 속내를 간파하고 계획을 세울 결심을 굳혀 나갑니다. 무엇보다 원리원칙주의자 이태신이 전두광의 광폭 행보에 제동을 걸며 충돌하고, 이를 빌미로 정 총장이 전두광과 그의 절친 노태건(박해준) 9사단장을 지방 ‘한직’으로 전보 조치하려는 움직임이 노출됩니다. 전두광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멤버들은 야합을 통해 반란을 모의합니다. 정 총장을 연행하고 ‘비 육사’ 출신들을 군 요직에서 몰아낸 뒤 대한민국 군대를 ‘육사 출신’들로 일원화 시키자는 일종의 대청소 작전을 주장합니다. 표면적 이유이지만 실제는 정권 찬탈입니다. 이미 군 조직 수장인 국방부장관(김의성)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박 대통령 서거 이후 대통령에 오른 전직 국무총리 역시 실권이 전무합니다. 전두광은 하나회 멤버들을 하나로 규합한 뒤 자신을 내치려 한 정 총장 그리고 이태신과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 김준엽(김성균) 현병감 등 자신의 반대파를 한 번에 쳐내려 합니다. 그 시작은 정 총장 연행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실제 12.12 군사 반란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당시 시내에서 울린 총성을 실제로 들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의 기억은 이 영화의 연출 방식과 톤 앤 매너를 구성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됐습니다. 실제 신군부와 그 반대 세력의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였던 순간, 내전에 버금갈 정도로 격렬했던 사건을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그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서울의 봄’은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심리와 심리가 부딪치는 정보 전쟁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12.12 직전까지 군 전체 명령권과 인사권을 틀어쥔 정 총장의 감시를 피해 멤버들을 끌어 모으고 반란 계획을 획책한 전두광 일당의 치밀함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입니다. 치밀하다 못해 음흉하고 또 음흉하다 못해 사악한 전두광의 대범함은 치가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김성수 감독과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의 내공입니다. 과정만 놓고 본다면 극중 전두광의 불도저식 추진력과 리더십 그리고 공간과 심리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무소불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이 결코 멋지게 또 극적으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미묘할 정도로 비열하고 체감이 될 정도의 교활하게 그려졌습니다. ‘실패하면 반역이지만 성공하면 혁명 아니냐’ 윽박지르는 전두광의 탐욕은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치욕스런 순간으로 기록되는 데 부족함이 없게 그려집니다. 그 치욕은 지금 이 순간도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부채의식이기도 하기에 더 없이 끔찍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전두광을 중심으로 한 반란 세력 움직임에 분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를수록 그 반대편에선 이태신과 공수혁 김준엽의 분투는 더욱 애끓고 슬프게 다가올 뿐입니다. 신군부 세력 반대편에 선 이들 3명의 역사 속 실제 감정을 직접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더라도 상황 자체로 흘러가는 극 속의 비극은 우리 모두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기에 차고 넘칠 정도입니다. ‘서울의 봄’이 불과 43년 전 발생했던 대한민국 현대사 비극이자 치욕이란 점 그리고 그 기억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존재가 대한민국 현실 논쟁을 지금도 들끓게 하는 발화점이란 것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로 느끼게 될 복잡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우리 모두의 여전한 부끄러움일 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2.12 군사 반란이 그들 계획대로 성공한 뒤 6개월 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수 많은 광주 시민이 신군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지금까지 법적 처벌을 받은 당시 신군부 세력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시대의 괴물이자 부끄러움 그리고 탐욕이 고개 들게 만든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다시 묻습니다. 그들은 ‘반역자인가 혁명가인가’라고. 물론 그 답은 우리 모두 그리고 역사가 알고 있습니다. 12.12를 성공시킨 전두광의 교활한 웃음에서 썩은 비린내가 풍겨오는 듯합니다. 개봉은 오는 22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