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영화 감독입니다. 그리고 ‘상남자’ 소문이 파다 했었습니다. 영화 감독이란 직업, 의외로 입소문이 많습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한다더라’ ‘배우들에게 어떻게 한다더라’ ‘스태프들에게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 등. ‘카더라’ 통신에서 연예인에 버금가는 루머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이 감독님에 대한 루머, ‘상남자’란 소문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실 입소문을 듣고 또 들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수긍도 됐습니다. 이 감독님의 대표작,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전설의 걸작 두 편이 있습니다. 물론 꽤 오래전 영화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영화 두 편, 걸작이란 타이틀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1997년 개봉작 ‘비트’ 그리고 1999년 개봉작 ‘태양은 없다’ 입니다. 이제 이 감독님에 대한 ‘상남자’ 입소문. ‘그럴 만 하네’라고 수긍하실 겁니다. 바로 김성수 감독님입니다. 우선 김 감독님, 1961년생으로 올해 예순 두 살이십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결코 적지 않은 연세 이십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 대면해 보면 ‘옆집 동네 형’ 느낌입니다. 그리고 ‘상남자’, 딱 그렇습니다. 거칠고 마초적 느낌의 ‘상남자’가 아닙니다.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진 않지만 이른바 외유내강 스타일의 상남자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김 감독의 아우라. 영화 연출로도 드러나는 듯싶었습니다. 2016년 ‘아수라’로 이 세상의 본질적인 권력 속성을 여과 없이 까발리며 모두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흘렀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의 치욕이자 2023년의 현재까지 관통하는 정치적 논쟁과 분쟁의 중심이 된 12.12 신군부 군사 반란을 담아낸 ‘서울의 봄’을 들고 왔습니다. 환갑을 넘긴 김 감독의 시선, 여전히 아니 아직도 생동감 있게 펄럭거리며 날뛰는 느낌입니다. 김성수 감독의 시대를 향한 영화적 시선, ‘서울의 봄’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김성수 감독은 올해 예순 두 살 입니다. 그건 다시 말해 1979년 12.12. 사태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란 얘기입니다. 12.12 당시 김 감독은 실제로 하늘을 울리던 총성을 들었답니다. 당시의 기억이 여전히 지금도 또렷하답니다. 그 기억은 ‘서울의 봄’ 연출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영화, 극화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당시의 그 ‘사태’를 오롯이 끌어 온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 기억과 경험이 꽤 많이 녹여 낼 수 밖에 없었답니다. 김 감독에게 전해 들은 얘기의 시작입니다.
“일단 제가 제안 받았을 때의 시나리오, 아주 잘 쓰여진 결과물이었죠. 근데 이걸 그대로 찍으면 ‘저들’의 승리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결과만 나올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앗 뜨거워’하면서 놔 버렸어요. 근데 그게 자꾸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10개월 뒤였나. ‘내가 다큐를 찍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해보자 싶었죠. 뭔가 좀 바꿔 보자 싶어서, 그때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을 부각시켜서 그들이 승리를 위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그 얘기를 해보자 싶었죠.”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의 말은 곧 이런 말이기도 합니다. 12.12 사태, 사실 굉장히 명확하게 또 간결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신군부 세력이 당시 계염사령관 정승화를 연행하면서 정권의 실세들을 숙청하고 자신들이 권력의 중심으로 나서는 계기. 이미 드라마에서 여러 번 그려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는 현대사의 흐름대로 갈 경우 너무도 뻔한 얘기가 나와 버렸습니다. 결단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들면 안됐습니다. 김 감독의 선택은 이랬습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밤에 벌어진 9시간 정도의 일이에요. 근데 간결하다기 보단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동시다발적으로 아주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근데 굉장히 소수의 신군부 세력을 그 많은 다수의 다른 군인들이 막지 못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죠. 그걸 들여다 보니 핵심이 두 가지더라고요. 하나는 탐욕이고 하나는 명분이었어요. 소수의 탐욕에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떡고물을 탐냈던 거죠. 그러면서 명분에 몰려 있던 많은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진 거에요. 그 두 개의 작동 기재가 당시 상황을 몰고 가 버린 거죠. 그래서 지금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망언을 하고 있고. 누구 하나 잘못을 고백하지 않잖아요. 그만큼 제대로 떡고물을 나눠 먹은 거에요.”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만들어 낸 얘기, 상황적으로는 실화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이 얘기는 창작입니다. 그래서 캐릭터들도 가상의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물론 캐릭터의 이름을 통해 실제 인물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 그리고 박해준이 연기한 ‘노태건’. 그 외에 일부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을 연상시키기 힘든 다른 이름을 끌어왔습니다. 반면 전두광만큼은 직설적으로 밀고 갔습니다. 그 비화는 이렇습니다.
“’광’자가 ‘빛 광’자 입니다(웃음). 우선 전두광은 몇 개의 후보를 놓고 투표를 했어요. 근데 몇 번을 해도 ‘전두광’이 항상 1등이었어요. 꽤 많은 후보가 있었는데, 실제 이름과 비슷한 그 이름에 친근감을 느꼈나 봐요. 사실 다른 배역들도 후보 이름이 너무 많았는데, 저희 영화에 대사가 있는 캐릭터만 60명이 넘어요. 이름이 너무 많아서 진짜 외우는 데 죽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 조감독과 스크립터 아니었으면 디렉션도 못 줄 뻔 했어요. 하하하.”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전두광 반대편에 선 ‘이태신’ 사령관은 배우 정우성이 연기했습니다.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의 실제 모델은 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소장)입니다. 영화에서도 올 곧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실제는 더 대쪽 같은 인물이었답니다. 영화 속 전두광의 불 같은 성격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다혈질이고 거침이 없는 인물이 고 장태완 사령관이었답니다. 김 감독은 정우성을 염두하고 이 배역을 준비했답니다.
“이태신 사령관은 처음에는 여러 사람과 대결하지만 점차 고립이 되는, 그래서 혼자 남는 남자이길 바랐습니다. 홀로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모습. 우성씨 외에는 생각이 안 났어요. 원래 실존 인물인 고인은 아주 거침 없으신 분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근데 영화에선 합리적이면서도 올곧고 자기 신념이 강한 그런 모습이길 바랐죠. 좀 외롭고 그러면서 반란군들과는 대비가 되는 멋진 인물. 우성씨의 외피와 많이 겹쳐 보였어요.”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개봉 전 그리고 개봉 이후에도 황정민의 존재감과 분장으로 화제를 모을 것이 확실합니다. 실존 인물과 너무도 닮은 듯한 외모가 소름 끼칠 정도입니다. 실존 인물 특유의 말투가 여러 개그맨들에게 의해 성대 모사가 될 정도였지만 반대로 영화에선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이 더 몰입감과 서사 자체의 힘을 실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전두광’에 황정민을 캐스팅한 이유를 전했습니다.
“’아수라’를 함께 하면서 감탄을 했었던 경험이 있었죠. 그리고 1년쯤 지나서 연극 ‘리차드 3세’ 공연을 보게 됐죠. 정민씨가 연기한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인데, 역사적으로 속이 뒤틀리고 악한 왕이에요. 그때 그 연기에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서울의 봄’ 준비를 할 때 그 공연을 다시 봤어요. 두 번째 보니깐 더 놀랍더라고요. 그때 ‘전두광’은 황정민으로 결정했죠. 탐욕의 왕으로서 마지막에 화장실에서 웃는 전두광의 서사를 정민씨에게 얘기하면서 제안을 했었어요. 출연 결정 뒤에 ‘창작’이니 인물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 단 상징적인 부분이 있어야 해서 대머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오케이를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김성수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극중 대사가 있는 캐릭터만 68명이 달한다고 설명한 김성수 감독. 또한 정해인과 이준혁 등 굵직한 배우들이 단역급으로 출연을 결정해 준 것도 너무 감사했답니다. 대한민국 학생 운동의 전설로 불리던 배우 안내상은 역설적으로 극중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출연을 결정해 줬답니다. 이런 모든 존재가 ‘서울의 봄’ 무게와 완성도에 힘을 실어줬답니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엔딩의 무게를 전하며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영화 속 엔딩으로 사용한 사진. 아마 12.12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그 사진부터 나올 겁니다. 그 사진 자체가 그들이 승리를 했다는 기록이잖아요. 군대 전체의 주요 보직을 자기들(하나회) 사람으로 다 채운 뒤 파티를 하고 나와서 찍은 사진이에요. 아주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했을 거에요. 전 그걸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만들어 냈던 그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 그 기쁨이 사실 알고 보면 이렇게 비겁하고 보 잘 것 없는 탐욕의 결정체였음을. 당신들은 역사의 패배자라는 것을.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