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카드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로 조달비용이 가중되면서 순탄치 않은 올 한 해를 보냈는데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합리화 등 모든 협회장들이 강조해온 숙원사업이 결실을 보는 듯하다가 뚜렷한 성과가 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직전 여신협회장을 지낸 만큼 협회 위상은 전보다 높아졌다고 하지만 숙원 과제를 해결하기는 벅찼습니다.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 외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허용, 비금융업 진출 등에 목말라 있습니다.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또 연기
지난해 10월6일 제13대 여신금융협회장으로 선임된 정완규 회장은 취임 후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여신전문금융업계가 되도록 영업환경 관련 규제 개선에 목소리를 내겠다"며 규제 완화에 앞장설 것을 강조했습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카드수수료 산정 체계 개선은 업권에서 중요하고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이라 말한 만큼 큰 의지를 드러낸 바 있는데요.
금융당국과 여신협회, 카드업계는 연말까지 적격비용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현재 수수료율의 근거가 되는 '적격비용' 산정 체계 개편을 두고 재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안을 논의 중에 있는데요. 이번에 주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내년에 재산정 주기가 돌아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 업계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상생금융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당국의 금리 인하 요구는 물론, 정치권 역시 총선을 앞두고 수수료 인하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드업계는 이미 0%대의 수수료율에 "카드사 본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인데요. 적격비용 재산정 때마다 가맹점 수수료는 인하됐는데, 2007년부터 총 14차례에 걸쳐 내렸습니다. 결제금액의 4.5%까지 부과했던 가맹점 수수료율은 매출 구간에 따라 수수료는 0.5~1.5%까지 인하됐고요. 여신협회에 따르면 수수료 적용을 받는 가맹점은 전체 310만개 중 약 96%에 달합니다. 정종우 카드사노조협의회 의장은 지난 7월 "92% 가맹점에서 카드로 결제할수록 카드사 적자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물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수료 인상은 꿈도 못 꾸겠지만, 업계 상황을 감안한다면 인하는 정말 어렵다"며 "재산정 주기를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지만 여신협회가 조금 더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카드업계 내 숙원이었던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올해만큼 공론화가 됐던 적은 없던 것 같다"며 "업권에서 대변해야할 부분을 여신협회에서 논의의 장으로 잘 띄운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7월 오전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 카드수수료 이슈 등 카드업계 현안 관련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비금융 철통규제 완화 시급"
정완규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여전업권은 △영위 가능한 겸영·부수업무 범위의 확장 △4차 산업 인프라를 위한 리스 물건 범위의 확대 △미래산업 발전을 위한 신기술금융 투자금지업종 완화 등 숙제들이 쌓여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그만큼 전통적인 카드사 본업으로 생존을 위한 활로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카드사 역시 수익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할부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캐피털사와 경쟁하고, 마이데이터 산업 이후 자산관리, 결제, 데이터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BC·우리·하나 등 8개 전업 카드사들의 올해 3분기 합산 당기순이익은 7369억원으로 전년 동기(8626억원) 대비 15% 감소했습니다. 수익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시장금리 상승에 타격을 맞은 결과입니다.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은 카드사와 관련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라 카드사가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이를 완화하겠다는 건데,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추가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금융권을 향해 '독과점' 문제 등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카드업계에선 은행권 독과점 해소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됐던 비은행권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도입 논의가 되살아날지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종지업 도입은 한국은행의 반대표와 은행권 전반의 회의적인 시각 등에 부딪혀 매번 고비를 마신 바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여신협회에서 카드사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조금 더 가시적인 성과를 내줬으면 좋겠다"며 "안 그래도 고금리로 수익성도 악화하고 자금조달이 부담되는 상황인데 은행 계좌를 거치지 않고 카드 대금 납부 등 처리하게 되면 은행에 지급하는 천억원대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현재 카드사들은 수신기능이 없어 여신전문금융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요. 현재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22일 기준 금융기관채의 AA+등급 여전채 3년물 금리는 4.451%로 거의 5%에 육박합니다. 높은 여전채 금리에 업계는 '자금 조달 부담 완화가 우선'이라며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전 여신협회장 출신인 것을 감안해 조금 더 여신협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줘야한다"고 주문하면서도 "관료 출신인 정 회장이 규제 완화에 힘을 실어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점포에서 점주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결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