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거대하다’였습니다. 인터뷰 당일 검정색 후드 티셔츠에 편안한 트레이닝 복 바지 차림으로 도착한 유지태입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비질란테’에서 ‘피지컬 괴물’ 조헌을 연기했습니다. 이 역할을 위해 무려 20kg 가량을 증량했습니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비질란테’ 세계관 속에서도 ‘조헌’은 ‘탈 인간급’ 피지컬과 파워를 보유한 캐릭터입니다. 패션모델 출신 답게 무려 188cm의 키를 자랑하는 유지태. 평소에도 거대한 느낌의 피지컬로 유명한 그는 ‘조헌’ 배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 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진 ‘비질란테’ 속 유지태의 조헌은 주인공 비질란테를 연기한 김지용(남주혁)과 같으면서도 완벽하게 다른 인물로 그려집니다. ‘비질란테’는 사적 제제가 소재입니다. ‘비잘란테’가 그리는 이 소재의 핵심은 ‘시스템’의 오류입니다. 주인공 김지용은 ‘비질란테’로 활동하면서 시스템의 오류를 증명하려 합니다. 반면 조헌은 시스템의 오류도 전체의 질서를 무너트리지 않을 정도라면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김지용과 조헌 모두 궁극적인 목적과 바람은 같습니다. 유지태를 통해 들어본 ‘조헌’이란 인물과 ‘비질란테’에 대한 얘기입니다. 촬영도 모두 끝이 났고, 방송을 통해서도 ‘’비질란테’ 시즌1의 마지막회가 공개가 됐습니다. 하지만 검정색 후드티를 입은 거대한 사내가 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에 순간순간 흠칫 놀랐습니다. 물론 유지태, 연예계에서 젠틀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매너남입니다. 더욱이 현재는 대학교에 출강하는 교수님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조헌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피지컬은 정말 ‘넘사벽’이었습니다.
배우 유지태.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비질란테’를 좋아하는 마니아층, 확실하고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영상화가 결정된 뒤 각각의 캐릭터를 누가 연기 할지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 나온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이 된 캐릭터가 바로 ‘조헌’입니다. 극중 설정으로는 키 2m 이상, 특수부대 출신, 주차된 차량도 두 손으로 들어 옮기는 힘의 소유자입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산과 같고 무지막지한 완력을 보유한 문자 그대로 ‘벽’ 그 자체와 같은 캐릭터입니다. 그는 이 배역을 맡은 뒤 몸부터 키웠답니다.
“제가 살면서 어디서 몸이 작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조헌’ 캐릭터는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더라고요. 일단 저와 가장 많이 맞붙는 ‘김지용’역의 남주혁도 작은 체구가 아니잖아요. 그에 비하면 더 압도적으로 보여야 하겠더라고요. 단순하게 몸을 찌우는 게 아니라 근육까지 붙은 거대한 체구를 만들어야 해서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며 20kg 정도를 증량했어요. 너무 힘들었죠. 특히 킥복싱과 권투 주짓수 등의 무술까지 배우려니 장난 아니더라고요.”
배우 유지태.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실 ‘조헌’이란 캐릭터의 비주얼적인 부분도 볼거리이지만 ‘비질란테’는 사적 단죄에 대한 사회적 화두와 공감대에 질문을 하는 밀도가 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극중 주인공 비질란테로 활동하는 김지용이 사적 단죄를 찬성하는 쪽이라면 조헌은 김지용과 어떤 부분에선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의 단죄를 지지하는 쪽입니다. 쉽게 말해 그는 법이 잘못됐다고 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조헌’을 연기한 유지태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주인공 김지용이 생각하는 정의와 조헌이 생각하는 정의, 분명 좀 달라요. 사실 정의라기 보단 그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다른 거죠. 일단 조헌을 만들어 가는 것에서 외모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내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가치관 철학 등. 제가 이 나이가 되니 조헌에게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게, 폭력을 폭력으로서 대응하면 결국 문제가 더 커지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너무 복잡하잖아요. 불합리와 모순 부정과 부패가 분명 존재하면서 반대로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김지용의 방식이 손쉬울 수는 있지만 전 조헌에게 동의를 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디즈니+ '비질란테'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결국 법에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을 매워줄 도구로서 김지용은 비질란테가 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조헌은 그럼 법의 구멍조차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란 말일까. 유지태에게 좀 더 깊은 의견을 요구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김지용은 기존 시스템의 전복, 다시 말해 시스템 자체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조헌은 질서를 위해서라면 현재의 구멍 난 시스템도 그 자체로서 유지가 돼야 한단 것에 도달하는 듯 보였습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조헌’이 더 옳다고 봐요. 어떤 식으로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고 궁극적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고 보거든요. 뭔가 시스템을 거스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더 큰 피해만 오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솔직히 오픈 마인드의 시스템은 아니잖아요. 뭔가 오히려 꽉 막힌 것에 가까운 점들이 많고. 법과 정의를 본다고 해도 딜레마는 분명 존재한다고 봐요. 그 딜레마의 갭을 줄여 나가는 게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싶은 거죠.”
배우 유지태.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외적으로 그리고 또 내적으로 유지태가 그려 낸 ‘조헌’이란 인물이 선보이는 정의. 탄탄한 원작 기반도 큰 힘이 됐고, 그 어떤 배우보다 진지하게 작품에 접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유지태의 존재감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지태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함께 했던 남주혁에게 모든 공을 돌렸습니다. 남주혁이 만들어 낸 ‘김지용’이란 인물. 그 인물이 선보이는 ‘다크 히어로’가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존재할수록 자신이 만들어 낸 ‘조헌’ 역시 힘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전 ‘비질란테’가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지 히어로가 되는 것보단 발이 땅에 붙어 있는 우리 주변의 얘기. 다시 말해 그런 현실적인 히어로 장르가 되길 바랐어요. 마블이나 배트맨 같은 히어로는 너무 익숙하잖아요. 김지용이 가진 서사와 그가 행동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한 조헌의 선택 등이 맞물리면서 굉장히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전한다고 봤어요. 그런 점이 충분히 느껴졌고요.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눈요기로만 남을 가능성이 너무 크잖아요. 다행스럽게도 ‘비잘란테’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디즈니+ '비질란테'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4050세대에겐 2000년대 개봉한 판타지 영화 ‘동감’ 속 회색 머리 대학생으로 기억되는 유지태입니다. 3040세대에겐 박찬욱 감독 희대의 걸작으로 불리는 ‘올드보이’ 속 의문의 백만장자 ‘이우진’으로 기억됩니다. 2030세대에겐 넷플릭스 ‘종이의 집’ 속 천재적인 교수. 그는 자신이 어떤 캐릭터로 기억이 되든 좋은 배우와 함께 흥행 배우로도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속내도 전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비질란테’의 ‘조헌’으로 당분간은 기억되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지적이고 순정물에만 집중된 필모였다면 결혼 이후부터 악역도 좀 소화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나이가 되니 다른 지점들이 보이면서 ‘비질란테’의 ‘조헌’ 같은 캐릭터도 맡게 된 것 같아요. ‘비잘란테’는 저에겐 새로운 가능성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주변에서 많은 것 같은데, 저도 기대를 하고 있어요. 시즌2가 될 수도 있고 프리퀄도 가능하고 또 시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비질란테’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고 자신하는데 그걸 좀 더 많이 시청자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 안에 숨쉬는 ‘조헌’까지도.”
배우 유지태.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