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코믹스’. 사전적 의미는 ‘연재 만화’. 우리에겐 ‘마블 코믹스’로 인해 낯이 익어 버린 단어. 때문에 ‘코믹스’ 자체가 단순한 만화에서 콘텐츠 확장의 의미가 담긴 산업화 중심으로까지 해석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블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 영화 산업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사실, 미국에는 마블에 대적할 만한 또 다른 코믹스 회사로 ‘DC코믹스’가 있습니다. 국내에선 마블보다 인지도면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설립연도로만 보면 ‘선배’입니다. 또한 미국 내에선 DC코믹스 소속 히어로 캐릭터들이 오히려 더 인기가 높단 평가도 많습니다. 아무튼 코믹스 콘텐츠 영상 전환 시기를 맞이하면서 마블이 MCU를 구성해 먼저 출발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DC도 이른바 DCEU(DC Extended Universe)를 구성해 라인업을 출범시킵니다. 하지만 MCU에 비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약점을 드러냅니다. 특히 히어로 세계관에서 ‘원픽’으로 추앙 받아 온 DC소속 ‘슈퍼맨’조차 DCEU안에선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MCU대비 연전연패 속에서 DCEU가 선택한 히든 카드는 바로 제임스 완이었습니다. ‘쏘우’ 1편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제임스 완 감독은 스릴러와 긴장감 넘치는 상황 연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기를 발휘해 왔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이 공포와 스릴러 장르에 집중된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DC코믹스를 소유한 워너브러더스 측은 그에게 낯설고 생소한 히어로 캐릭터의 DCEU라인업 연출을 제안합니다. 바로 물 속의 슈퍼맨 ‘아쿠아맨’입니다. 2018년 국내에서 개봉한 ‘아쿠아맨’ 1편 성적은 504만. ‘코로나19’ 이전 임을 감안하고 국내에서의 낯선 인지도 캐릭터임을 감안했음에도 기록적인 흥행 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뒤 제임스 완 감독은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으로 DCEU에 복귀했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 DCEU 마지막 라인업입니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DCEU는 제임스 건 감독의 ‘DC유니버스’로 재편됩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1편의 시점에서 4년이 지난 뒤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1편은 육지인과 아틀란티스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서(제이슨 모모아)가 두 세계 통합과 연결이 되는 상징성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틀란티스 왕좌에 오르는 순간이 담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중 세계 예언과 진정한 왕으로서의 의미와 자격을 뜻하는 삼지창을 손에 넣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판타지 히어로 무비의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졌습니다. 그렇게 아틀란티스 왕좌에 오른 아서. 하지만 외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유인으로 살아온 아서에게 왕으로서의 삶은 고되고 힘든 자리일 뿐입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왕으로서의 삶, 히어로의 삶 그리고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삶. 아서에게 이런 삶은 이율배반적인 가치의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행복하고 또 즐겁습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비어있는 듯한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 아서에게 여전히 그리고 당연하게 이 세상을 위협하는 숙적이 다시 나타납니다. 1편에선 메인 빌런 ‘옴’의 부하이자 서브 빌런 정도로 등장한 바 있는 ‘블랙 만타’. 그 역시 1편에서 4년이 흐른 시점, 그 시간만큼 아서를 향한 복수심은 더욱 뜨겁게 끓고 또 끓었습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옴’도 아서에게 패해 데저트 왕국 지하 감옥에 투옥돼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4년의 시간 동안 블랙 만타는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블랙 만타는 4년의 시간 동안 아서를 이길 방법만 고민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바다 세계 속을 뒤지고 또 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대의 어떤 무기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기를 앞세워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무엇’을 건드립니다. 이 ‘무엇’으로 인해 수중 세계는 물론 물 밖 세계까지 전 지구적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 위기에 수중 세계 ‘아틀란티스’는 직격탄을 맞습니다. 급기야 블랙 만타 군대가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침략을 받지 않은 ‘아틀란티스’ 한 복판을 침공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틀란티스는 대책 회의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블랙 만타가 아틀란티스에 침입해 탈취한 위험 물질의 위력 그리고 지구 어딘가로 숨어 버린 이들 군대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를 위해 아서는 딱 한 사람, 누구도 환영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인물 ‘옴’을 선택합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전편에서 왕좌를 놓고 싸우는 골육상쟁을 얘기했습니다. 속편에선 골육상쟁의 두 주인공이 화해와 이해를 통해 공존을 선택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비밀과 마주합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 기반 아틀란티스의 왕좌는 그 자체로 권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이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속 숨은 얘기입니다. 제목 속 부제와도 같은 ‘로스트 킹덤’이 바로 그 실마리입니다. 전편에 등장한 바닷속 왕국, 다시 말해 아틀란티스를 중심으로 한 일곱 연합체 구성이 등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편에서 등장한 왕국은 총 여섯. 그럼 나머지 하나가 남습니다. 바로 그 나머지 하나가 ‘로스트 킹덤’입니다. ‘로스트 킹덤’은 힘을 향한 욕망이 터지면서 사라지게 된 전통적 서사 구조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익숙한 서사입니다. 한 가지 특이점이라면 혈육 사이에서 벌어지는 골육상쟁 비극이 아서와 옴의 문제만은 아니었단 겁니다. 그 비밀이 바로 ‘로스트 킹덤’, 즉 왕국이 사라지게 된 비밀이기도 합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쿠아맨과 로스트킹덤’, 5년 전 1편과 비슷한 톤 앤 매너입니다. 일단 볼거리, 여전히 화려합니다. 수중 세계와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물 밖 세계 움직임과 다른 시각화로 인해 강력한 채도로 만들어져 인상적입니다. 1편에서 등장한 바 있는 화려함이 그 단어 자체로 증명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 서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은 아서와 옴의 색다른 브로맨스입니다. 가장 날카로운 앙숙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은 마블의 ‘토르와 로키’를 연상시킵니다. 성격적으로는 아서가 장난기 가득한 로키, 근엄하고 묵직한 느낌의 옴이 오히려 토르에 가깝습니다. 극 서사 전체적으로 아서와 옴의 ‘티키타카’가 사실상 거의 유일한 코미디 요소로 자리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둘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코미디, 할리우드 유명 레전드 영화의 모든 것을 끌어 온 말장난 스타일. 이해한다면 큰 웃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만의 리그’에 가깝습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럼에도 여전히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강점을 논하자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화려함’ 그 자체입니다. 수중 세계의 채도 높은 비주얼 배경 속 펼쳐지는 ‘크리처 전투’는 ‘아쿠아맨’ 세계관의 상징입니다. 이번 속편에선 수중 세계 ‘아틀란티스’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1편에서 등장한 바 있는 데저트 왕국 전투 그리고 미지의 섬에서 펼쳐지는 추격이 관객들의 오감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인디아나 존스’에서 펼쳐지는 어드벤처 추격 수위와 비교될 정도입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물론 이 모든 것을 압도할 할만 ‘한 방’이 부족한 것도 분명합니다. 1편에선 마지막 대규모 전투 그리고 거대 크리처 ‘카라덴’이 활약하는 모습이 판타지 히어로 장르에서의 카타르시스를 대신했습니다. 이런 지점이 2편에선 크게 부각되진 않습니다. 이외에 마블의 ‘블랙 팬서’가 담아낸 인간 세계와의 공존 메시지가 이번 ‘아쿠아맨’ 속편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 장면에선 또 흥미로운 패러디도 스크린을 장식합니다. 역시 마블 히어로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이크와 단상 그리고 호쾌한 정체성 공개. 생각나는 히어로가 한 명 있으실 겁니다.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쿠아맨과 로스크 킹덤’, 공식적으로 DCEU 마지막 라인업입니다. 사라지는 DCEU 마지막 주자로서 모자람도 부족함도 없습니다. 하지만 출중함도 없습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흥행 성적은 추후 제임스 건 감독이 새롭게 구축할 DC유니버스의 기본 토대와 방향성을 제시할 듯합니다. 12월 20일 개봉.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P.S 쿠키 영상은 한 개 입니다. 초반 엔딩 크레딧 이후 등장합니다. 아쿠아맨 세계관과 연결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DC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하는 제임스 건 감독이 ‘아쿠아맨’ 세계관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활약을 펼칠 캐릭터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될 듯도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