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후 보름 사이 총 6차례나 '총선용 정책'을 내놨습니다.
총선 표심을 겨냥해 정책 방향을 설정하다 보니 내놓는 정책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발언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정의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은행권의 '2조원+α 상생 패키지'와 제2금융권의 '3000억원 규모 이자 경감 계획 추진'은 관치 금융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8개 법안 거부권 행사…총선용 정책은 '일방통행'
정부발 '총선용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표적인 부자 감세인 '금투세 폐지'입니다. 정부는 17일 이를 공식화했는데요.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내년 시행 예정인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으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 이상 금융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해당 소득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과세하는 내용입니다. 금투세는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 여야 합의로 도입, 2023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2022년 12월 여야 합의로 시행 시기가 2025년으로 미뤄졌습니다.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비롯해 정부 출범 이후 8개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여야 합의를 뒤집은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또 부처별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바꿔 정책 홍보의 자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기 위한 취지라고 하지만 총선을 앞둔 일방적인 소통의 자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금까지 4차례 진행된 민생토론회의 주요 내용이 각종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채워져 포퓰리즘 정책이란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 4일 진행된 새해 첫 민생토론회에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128만명에 대한 세금 납부기한 연장 등의 선심성 정책을 내놨습니다. 이어 10일 두 번째 민생토론회에선 "30년 이상 노후화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며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도 약속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투기 수요를 부추기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수도권 민심을 겨냥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제로 열린 세 번째 민생토론회에선 "올해 만료되는 반도체 투자 세액 공제를 연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반도체 투자 세액 공제를 두고 "대기업 퍼주기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비판했습니다. 기업의 일반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방침과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은 데 이어 정부의 감세 기조를 거듭 강조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경기 고양 일산동구 백송마을 5단지를 방문해 지하주차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늬만 '상생금융'…사실상 은행권 압박
윤 대통령은 이날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민생토론회에선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2조원+α 상생 패키지를 마련했다"며 "제2금융권도 3000억원 규모 이자 경감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치권과 시장 안팎에선 "무늬만 상생 금융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간 은행의 과도한 이자 수익을 비판한 윤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회사의 수익이 6조 정도인데, 은행권 수익이 60조에 달한다"고 재차 압박했습니다.
오는 16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법정부담금 제도 폐지 추진을 시사했습니다. 법정부담금이란 특정 공익사업과 관련해 국민과 기업에 부과되는 준조세로, 담배에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껌값에는 폐기물부담금이 붙습니다. 각종 부담금을 폐지하면 24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전망입니다. 나라곳간이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금투세 폐지와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법정부담금 재검토 등 윤 대통령이 밝힌 감세 정책 대부분은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법 개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기업과 다주택자 등을 향해 '감세 추진', '규제 완화' 신호를 거듭 발신하면서 총선용 정책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거라는 게 합의를 이뤄가는 것인데,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 과정이 돼서는 안 된다"며 "정책을 이야기할 때 수입과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하고, 혜택이 있으면 누군가는 어떤 부담을 지는 것이니 부담을 지는 쪽에 또 다른 혜택을 베풀어야 한다고 동시에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