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저성장의 늪에 바진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K콘텐츠'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향후 글로벌 성장률이 산업 전체 평균 보다 높은데요. 특히 한국 콘텐츠 산업은 K팝, K드라마, K영화, K웹툰 등이 세계적인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우면서 고공행진 중입니다. K콘텐츠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들여다봅니다. 편집자주
전 세계를 ‘폐쇄’ 단계에 들어서게 했던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K콘텐츠 ‘확산(세계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전까지 K콘텐츠는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으로 깜짝 이슈를 만들어 내던 IP 정도였죠.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극장 산업이 사실상 문을 닫다시피 한 상황이 되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급격한 위축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구원자가 나타납니다. 집에서 콘텐츠를 관람하는 OTT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OTT를 놀이터 삼아 K콘텐츠가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산업도 극장이 아닌 OTT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됩니다. 손바닥 안에서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여전히 극장은 위험하다’
작년 초 촬영을 시작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폭군’. 박 감독의 히트작 ‘마녀’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으로, 이른바 ‘마녀 유니버스’를 더욱 확장할 기대작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최근 ‘폭군’이 극장 개봉이 아닌 OTT행, 그것도 시리즈로 전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폭군’측은 “편집 과정에서 시리즈로 전환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며 디즈니+에서 공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지만 영화계 관계자들은 ‘폭군’측이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떠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리스크’ 콘텐츠입니다. 극장 개봉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극장이 아닌 OTT를 선택하게 되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통상 OTT는 ‘제작비+10%’ 내외의 판권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매입합니다. 제작사 입장에선 영화 흥행 여부에 따라 로또처럼 터지는 큰돈은 아니지만 손익분기점+일정 수익을 보장받는 체계가 구축되는 겁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끝났음에도 극장 산업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투자 배급사 영화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잠’ ‘30일’ ‘밀수’ ‘범죄도시3’ ‘서울의 봄’ 등 5편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데 사실상 ‘흥행’이란 단어를 붙일 영화는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 단 2편이고 나머지 3편은 제작비 정도만 회수한 정도입니다. 지난 20일 개봉한 ‘파묘’가 26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며 흥행몰이중이지만 여전히 극장의 관객 유입 회복력은 물음표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부가판권을 위해서라도 ‘극장 개봉’이란 타이틀이 필요한 걸 알지만 현 상황에서 ‘극장 개봉’은 오히려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OTT 통한 영화산업 체질 변화
상영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영화 콘텐츠는 상영할 곳을 찾아 헤매는 ‘플랫폼 경쟁’에서 상영할 곳을 골라 선택하는 ‘플랫폼 선정’으로 시스템 전환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변화는 ‘극장 제일주의’에 머물러 있던 국내 영화 산업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토대가 됐고, ‘제작-배급-상영’을 독점해 온 국내 대기업 수직계열화마저 흔들어 버렸습니다.
‘극장’
(상영업
)이 흔들리면서 배급 시장 전체 빅데이터가 무너져 비수기와 성수기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 지난
20일 개봉한
쇼박스(086980) 투자 배급 영화
‘파묘
’는
14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 기존 빅데이터대로라면 성수기 개봉이 옳습니다
. 하지만 비성수기인
2월 말 개봉해
26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는 중입니다
. 결국
OTT가 상영업 자체의 판을 흔들어버린 겁니다
.
영화 콘텐츠가 OTT행을 선택하는 건 단순히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OTT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미끼로 영화 콘텐츠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극장만이 ‘콘텐츠 유통의 최전선’이란 불변의 영역이 무너진 것은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OTT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투자에 대한 의미를 전했습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작년 4월 국내 시장에 4년간 총 25억 달러(한화 약 3조3000억원)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진출 이후 2020년까지 오리지널 K콘텐츠에 7700억원 수준을 투자했습니다. 그 뒤 2021년 5000억원, 2022년 8000억~9000억원, 작년에는 약 1조원을 쓴 것으로 추산됩니다.
OTT의 과감한 투자는 국내 콘텐츠 시장 체질도 바꿔 놨습니다.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모든 얘기를 담아야 하는 영화 형태가 아닌, 연속으로 방영되는 ‘시리즈 포맷’이 대세를 이루면서 K콘텐츠 완성도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스위트 홈’ ‘지옥’ 등은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란 타이틀을 만들어 낸 주인공들입니다.
넷플릭스 측은 “향후 시리즈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콘텐츠 성공 여부에 따라 창작자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실행할 계획”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촬영 세트장과 편집시설 등 관련 인프라 확충과 차세대 크리에이터 육성 등 전반적인 콘텐츠 생태계 구축과 선순환에까지 기여한다는 계획이다”고 말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