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고 아름답다"
혼영(혼자 영화관람)이 취미인 저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는 꼭 보려고 합니다. 어떤 점에서 이견이 많은지, 왜 그런지를 감상하고 골똘히 생각해보는 것은 꽤나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것도 즐길 줄 알아'라는 일종의 허세일 수도 있고요. 대중이 낯설어하는 만큼 감독, 혹은 작가의 의도가 투명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2024)'을 보고 난 뒤가 딱 그랬습니다. 주인공 엠마 스톤의 연기가 감동이었고, 화면은 아름다웠으며, 내용은 기이했고, 주제는 명확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이야기꾼이 원작을 바탕으로 구현해낸 '스토리'는 모두가 받아들일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와 영화계가 너무나 좋아할 만한 예술이었죠.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임신한 채 다리에서 투신한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를 천재 과학자 고드윈 백스터(윌렘 대포)가 살려내면서 시작합니다. 죽은 어른의 몸에 살아있는 아이의 뇌를 이식한 거죠. 생체연구물이 된 벨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경험하려 하지만 고드윈의 과한 보호 속 연구물로서 자리합니다. 고드윈은 벨라를 묶어두기 위해 의사이자 자신의 조교인 맥스(라마 유세프)와 약혼을 시키는데요. 벨라는 이를 뿌리치고 바람둥이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납니다.
알을 깨고 나아간 벨라는 세상의 추악한 모습, 인간들의 가난한 삶, 성노동자로서 밑바닥까지 보고 나서야 고드윈의 둥지로 돌아오는데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였던 벨라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성장해 자신의 삶을 꾸리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됩니다.
벨라가 성적 충동(본능)을 통해 폭력과 환희를 경험하고 세상을 알아간다는 이야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제게 무한한 긍정과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꽤나 감동한 건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주체적인 삶은 무엇인가. 어떤 선택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는가'에 대한 감독의 질문이 명확하게 제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벨라가 엉망진창일 순간에도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삶을 그녀에게 투영시킬 수 있습니다. 벨라가 정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통해 헤맸던 시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가 옳은 선택을, 자신이 주도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결말은 우리네 삶도 끝은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을 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 벨라 너무 가엽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들으며 영화 제목을 곰곰이 되뇌어 봤는데요. 세상에, 가장 가여운 건 저였습니다. 몇 시간 뒤의 출근에 '아 어떡하지, 뭘 또 해야 하지' 풀이 죽은 제 모습은, 가장 밑바닥일 때도 세상이 궁금해 눈을 반짝였던 벨라와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시시해진 건 비단 저 뿐만이 아닐겁니다. 벨라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듯, 우리 역시 언젠가는 행복한 삶을 맞이하길 바라며 영화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