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디즈니+가 640억원의 손실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최신작이 연이어 시청자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4월 10일 공개한 10부작 ‘지배종’은 무려 240억원을 투입했지만 오히려 3월 대비 4월 활성 이용자수가 30만명이나 줄어들었고, 지난 15일 5화까지 공개된 ‘삼식이 삼촌’은 4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호불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불거졌던 국내 철수설을 반박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디즈니+의 국내 철수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유입니다.
손은 큰데 얻는 건 없는
2021년 11월 디즈니+가 국내 시장 진출을 발표하면서 국내 OTT 시장이 들썩였습니다. 그동안 디즈니+는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를 총 19편 공개했는데요. 이 가운데 유의미한 관심과 흥행을 끌어낸 작품은 ‘카지노’와 ‘무빙’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쟁사인 넷플릭스가 ‘킹덤’, ‘스위트홈’, ‘D.P.’, ‘수리남’,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오징어 게임’ 등 글로벌 히트 시리즈를 연이어 쏟아낸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국내 투자 규모에서는 넷플릭스에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도 수익적인 측면에서 재미를 거두지 못하다 보니 한때 국내 철수설이 기정사실처럼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빙’이 히트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작년 9월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대표는 ‘디즈니플러스 오픈하우스’에서 “국내 사업 철수는 없다”고 세간의 ‘철수설’에 대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잠깐 반짝였던 그때와 또 달라진 듯 합니다. 2024년 5월 현재 국내에 서비스되는 OTT 5개사 중 디즈니+는 압도적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4월 OTT 월간 이용자수는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디즈니+ 순입니다. 넷플릭스는 1129만명, 티빙은 706만명, 쿠팡플레이가 702만명, 웨이브는 408명인데 반해 디즈니+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한 달에 한 번 이상 앱 사용자)는 229만명에 불과합니다.
넷플릭스의 5분의 1수준이지만 콘텐츠에 대한 투자만큼은 넷플릭스 수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편당 20~30억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처럼 디즈니+도 ‘무빙’ 시리즈에 편당(총 20편) 3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4월 공개한 ‘지배종’은 240억원, 5월 공개한 ‘삼식이 삼촌’은 4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국내 사업을 이어갈수록 적자 규모만 커지는 처지에 놓이게 된 셈입니다.
연작 시리즈, 너무 큰 세계관
자본력도 있고 막강한 뒷배경(월트 디즈니)도 있는 디즈니+가 국내 안착에 성공하지 못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국내 시장과 맞지 않는 콘텐츠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디즈니+는 그동안 자사 콘텐츠 기반 서비스를 앞세운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극장 산업 패러다임을 바꾼 ‘마블’ 시리즈의 스핀오프 스토리를 시리즈로 제작해 연이어 공개했지만 기대와 달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블 시리즈는 수십 개 극장 개봉작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 연작 스토리로, 각각의 개별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사용자는 새로운 시리즈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를 이른바 ‘스페이스 오페라’로 치환해 SF 장르로 풀어낸 ‘스타워즈’는 전 세계에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잡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외면받아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타워즈’ 세계관 확장 시리즈 역시 국내 가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지배종’ 참패 이후 배우 송강호의 데뷔 첫 드라마 출연작인 ‘삼식이 삼촌’으로 반전을 꾀해보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내 OTT흥행 트렌드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극+성공 신화' 스토리가 큰 힘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에는 5부까지 공개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디즈니+가 버티겠나”란 말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강풀 작가의 ‘무빙’ 시즌2와 ‘조명 가게’ 제작이 예고됐지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버텨낼 여력이 있을지부터 의문입니다. 디즈니+측은 또 다시 불거진 철수설과 관련해선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디즈니+ 입장에선 국내 OTT 사용자 판도를 바꿀 필살의 콘텐츠가 '절실한 때'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