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영화 <클래스>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로랑 캉테가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참석 차 한국을 방문했다.
로랑 캉테는 이번 JIFF 개막작인 <폭스파이어>의 감독이자 이번 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25일 <폭스파이어> 사전 공개 시사회 후 열린 기자회견에는 로랑 캉테 감독과 고석만 집행위원장, 김영진 프로그래머, 출연배우 케이티 코시니가 자리 해 이번 영화제의 특징과 개막작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유독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영화가 많이 눈에 띈다. 1950년대 펼쳐지던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담은 영화 <폭스파이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영화 <폭스파이어>는 조이 캐롤 오츠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녀 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상처 입은 소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섞이는 대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폭스파이어'라는 이름의 이 공동체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폭력적인 집단으로 변질된다.
고석만 JIFF 집행위원장은 “시대성 자체보다도 현재에 얼마만큼 의미를 갖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개막작인 <폭스파이어>의 경우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고, 감독이 사용한 의식의 흐름이나 병렬 기법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 기획을 맡은 김영진 JIFF 프로그래머는 “사회적 이슈들을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호흡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전했다. 이어 “로랑 캉테 감독의 지명도와 작품의 우수성 때문에 <폭스파이어>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됐는데, 이렇게 직접 배우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 참석해 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로랑 캉테 감독은 “JIFF에 초청을 받고 이렇게 <폭스파이어>를 개막작으로 상영하게 돼서 무척 기쁘다”면서 “한국에서도 배급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로랑 캉테 감독과의 일문일답.
-<폭스파이어>라는 제목의 소설이 영화의 원작이다.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친구에게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영화에서 다룬 주제와도 비슷한 면이 많아 좋았다. 소녀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어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겪는 부조리와 부당함에 맞서 사회에 저항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내가 다루던 것과 비슷하다. 또 정치적인 면을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고서도 강한 서사를 표현할 수 있겠다 싶어 흥미를 느꼈다. 이 밖에 책을 읽던 당시 젊은이들과 함께 전작 <클래스>를 편집하고 있었는데 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작품을 또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의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영화에 담아냈나?
▲일단 책에 충실해서 영화를 만들려 했다. 캐릭터 자체에 애착을 느낀다. 배우 케이티가 맡은 ‘메디’라는 인물은 그룹 안의 일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룹과 약간 거리를 두고 그룹을 바라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메디의 모습이 세상에서 나의 자리, 영화를 만들 때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 때 그 안에 들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원작의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기억을 간직하려면 이야기로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경험한 시대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나?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배우들 덕분에 영화작업은 수월했다. 처음 리허설 했을 때도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각자 맡은 배역에 충실하게 연기해서 놀라웠다. 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면서 그 안에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했다.
-영화의 뒷부분에 보면 각 인물의 결말에 대해 묘사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원작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내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당시 미국을 생각해 보면 아메리칸 드림이 한창이던 때인데, 나는 그 꿈의 이면, 꿈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녀들 역시 결국에는 소외된 계층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카시즘, 반 공산주의 같은 당시의 다양한 이념들도 영화에 담았다. 소녀들의 모습은 공산주의 쪽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을 나름대로 실현하려 했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는 사실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 경제발전이나 자유 외에 사람들의 고통, 시련도 그리고 싶었고, 고착된 이미지에 저항하고 싶었다.
또한 1950년대와 현대를 잇는 다리도 만들고 싶었다. 과거의 역사라든지 1950년대 소녀들의 감성, 그들이 느끼는 것들이 지금도 똑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감정이나 기억들이 여전히 내재돼 있고 전해 내려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프랑스 감독인데 영어로 영화를 만들었다. 소감은?
▲보시다시피 영어가 유창하진 않지만 이해하는 데는 문제 없다. 나는 중국어를 모르지만 중국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는 지는 직감적으로 안다. 직감을 믿으며 연출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배우들을 믿고 연출했다. 배우들이 스스로 원하는 대사를 원하는 대로 연기하도록 했다.
-이번 JIFF에서 한국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역할도 맡았다. 평소에 한국영화를 좋아하는지?
▲심사위원을 맡는 것은 내게 자주 있는 일 아니다. 이번에는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다. 프랑스에서는 다행히도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둔 감독의 작품들이 이번 JIFF에 몇몇 있더라. 4일 간 총 10편을 볼 텐데 기대가 많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