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주세페 베르디와 리하르트 바그너는 모두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인 베르디의 음악에 비해 독일 출신인 바그너의 음악은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아마도 국내 음악팬들이 바그너 특유의 진중하고 묵직한 사색보다는 베르디의 화려하고 유려한 서정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리라.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바그너 공연이 유독 반가웠던 이유다. 여기에다 지난 1월25일 정명훈의 허리통증 악화로 한 차례 취소됐다가 재공연 된다는 점도 기대감을 부추겼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무르 익은 바그너의 밤
이날 공연에서는 '탄호이저'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가 차례로 연주됐다. 연주에서 일부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지만 공연이 끝나자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국내 콘서트장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온전히 바그너의 밤이었다.
1부에서 '탄호이저' 서곡은 바그너의 모든 서곡과 전주곡 중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꼽힌다. 이 곡은 중세독일의 기사 탄호이저가 신성한 사랑과 관능적 사랑 사이에서 방황한다는 극의 전체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관악기와 저현부, 고현부의 부드러운 음색이 차례로 겹쳐지며 절묘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가 하면, 금관악기의 두툼한 음색은 바그너 특유의 웅장함을 웅변한다.
특히 이날 서울시향 연주에서는 팀파니 주자의 박자감이 여전히 아쉬움을 자아냈지만 현악 파트와 관악 파트의 경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현악 파트는 한없이 가늘면서도 맑고 높은 선율을 연주하다 격렬한 진동으로 급 반전하면서 탄호이저의 심경을 효과적으로 대변했다. 통일 되지 않은 음색으로 아쉬움을 주곤 했던 관악 파트는 기대 이상의 연주를 보여줬다. 바그너의 음악에서 관악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한 모습이었다.
이어서 연주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의 경우 상대적으로 평이했다. 서울시향이 이미 지난해 여름, 3시간 30분에 걸쳐 성악가들과 함께 대형 콘서트 버전으로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인지 이날 연주에서는 뚜렷한 개성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무리 없이 연주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2부에 접어들어 진행된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하이라이트 공연은 네덜란드 작곡가 헨크 데 블리거가 장장 16시간짜리인 대작 원본을 67분으로 압축해 놓은 관현악 편곡판을 바탕으로 연주됐다. '니벨룽의 반지'는 이날의 최고 수확이었다. 관객석의 일부 소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향은 짧은 시간 안에 바그너 악극의 매력을 성공적으로 피력해냈다. 4대의 하프를 배치하고, 트럼펫과 호른을 보강하면서 바그너만의 스케일을 한껏 뽐냈다.
◇아쉬운 관객매너
사실 영화나 책처럼 이미지나 문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음악만으로 '니벨룽의 반지'에 관한 전설을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이 날처럼 짧게(?) '니벨룽의 반지'를 연주할 경우 음악적인 흐름을 놓치기 쉽다. 하이라이트만 모아 놨기 때문에 관객과 연주자 모두 예민하고 감각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 최대한 집중한 상태로 소리의 길을 따라 가야 라인 강이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상상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한 관객의 실수가 이 날의 반지 대장정을 결정적으로 방해했다. 연주 초반 타악 연주자들의 힘을 빌어 대장장이들의 망치 소리를 들으며 난쟁이들이 사는 지하세계에 당도한 이후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직전 조용해진 순간에, 엄청난 크기의 휴대폰 벨소리가 장시간 울린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음악의 흐름이 깨지면서 관객과 연주자 모두 다시금 집중력을 회복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공연 후 뜨거운 '브라보'를 외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연 중 기본적인 관람 매너를 지키는 일이다. 피치 못해 내뱉는 기침 외에 습관적인 헛기침이나 휴대폰 벨소리는 반드시 자제해야 한다. 음악이나 음악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고민해볼 때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름 아닌 관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