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가수 고(故) 김광석과 그의 노래를 소재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올해 대학로의 한 자락을 차지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이어 올 연말에도 창작뮤지컬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광석 노래로 만든 첫번째 뮤지컬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대구에서 흥행한 이후 서울로 진출한 뒤, 또 서울에서도 앙코르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의 흥행비결은 뮤지컬의 기본기인 노래가 출중하다는 점, 그리고 김광석 노래가 담고 있는 가치를 진솔하게 읽어낸 점이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공연제작사 LP STORY)
이 작품은 소극장 뮤지컬인 까닭에 관객의 눈을 끌어모을 화려한 볼거리가 없다. 극의 줄거리마저도 소박하다. 극은 김광석처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취업전선에 내몰리는 90년대 학번 무명 가수들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무명가수 이풍세와 그와 함께 활동했던 대학 동아리 '블루드래곤즈'가 우여곡절을 겪는 이야기인데, 사실 전형적이고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노래가 다소 허약한 이야기의 설득력을 크게 보완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김광석의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가난과 사랑, 좌절된 꿈이라는 뻔한 줄거리임에도 김광석 노래 한 곡 한 곡의 가사를 신중하게 해석하고 배치한 덕분에 자연스레 깊이가 생긴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극의 몰입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블루드래곤즈의 멤버들, 특히 이풍세 역의 박창근과 최승열은 탁월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김광석 노래에 심어진 가치관을 무리 없이 시현해낸다. 박정권과 김의성이 맡는 일인 다역의 멀티맨은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입체적인 재미로 다소 밋밋한 줄거리를 보완한다.
결국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김광석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삶의 태도이다. 김광석 노래의 감동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이 뮤지컬의 흥행 키를 쥐고 있다. 좀더 잘 짜여진 뮤지컬, 창의적인 뮤지컬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사실 노래의 감동과는 별개로, 무대를 바라보면 머릿 속에는 여러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예컨대 이풍세가 왜 김광석 같은 가수가 되고 싶은 것인지, 이풍세 외 다른 멤버들은 왜 블루드래곤즈에 들어온 것인지, 이풍세의 아버지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이다. 앞으로 더 많은 관객을 아우르는 뮤지컬이 되려면 극의 줄거리에 어느 정도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작 이금구, 연출 김재한, 출연 박창근, 최승열, 안수빈, 서은, 홍종화, 정한별, 권혁준, 언희, 황려진, 박정권, 김의성, 28일까지 아트센터K 네모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