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공룡센터' 하승진(30·KCC)의 새해 첫날을 한 명의 관중이 망쳤다.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의미가 관중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관중에게 선수의 심장까지 겨눌 권리는 없다. 여전히 일부 관중들은 스포츠 선수를 구단의 부품이나 경기만 뛰는 기계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하승진은 지난 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 경기에서 오랜만에 코트에 나섰다. 지난해 12월9일 서울 SK전에서 당한 종아리 부상 이후 약 한 달 만의 복귀전이었다. 게다가 하승진은 새해 첫날을 맞이해 7연패에 빠진 팀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과 더불어 한 여성 관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그는 큰 상처를 받은 채 코트에서 내몰렸다.
이날 하승진은 2쿼터를 시작하며 코트를 밟았다. KCC의 허재 감독은 경기 감각이 떨어진 하승진을 배려해 벤치에서 흐름을 읽은 뒤 경기에 나서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하승진의 경기 감각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3개의 야투 중 1개를 넣는 데 그쳤으며 3쿼터도 1분 30초 남짓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사고는 경기 종료 약 6분여를 남겨두고 터졌다. 삼성의 속공 과정에서 리오 라이온스의 팔꿈치에 코를 맞은 하승진이 코트에 쓰러졌다. 하승진의 양쪽 콧구멍에서는 피가 새어나왔으며 꽤 긴 시간 동안 코트에 쓰러져 있었다. 이 장면은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을 차린 하승진은 치료와 휴식이 필요해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 순간 체육관 통로에 가까이 앉은 한 관중이 하승진을 향해 욕설을 곁들인 야유를 퍼부었다. 흥분한 하승진은 관중에게 무언가 말을 하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경기 진행요원들과 경호원들이 몸으로 하승진을 막아섰다. 끝내 하승진은 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코트에서 내쫓기듯 떠났다.
삼성 측은 경기가 끝난 뒤 해당 관중을 불러 면담했다고 한다. 그 결과 관중은 욕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지 그 관중은 하승진이 제대로 맞지도 않았는데 엄살을 피운다는 식으로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여론은 좋지 않다. 관중의 언행이 상식에서 벗어났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관중의 월권이었다. 선수는 코트에서만 선수다. 사실 스포츠 선수라는 단어에서 선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명확한 정의도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승진도 40분의 경기가 끝나면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이다.
해당 관중에게 "만약 당신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코피가 났는데 누군가 엄살 피운다고 하면 어떤 감정을 느낄 것 같은가?"라고 묻고 싶다.
하승진이 최근 KCC에 보탬이 안 된 것은 사실이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팀에 기여를 하지 못해 KCC가 부침을 겪은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코트 안에서 피까지 흘리며 쓰러진 선수에게 관중이 엄살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할 자격은 없다. 모든 장면은 안방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사실로 확인됐다. 이런 태도는 스포츠 선수를 운동만 하는 부품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편협한 사고다.
과거 축구 선수 안정환은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 뛰어 올라가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한국 축구가 발전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한 여성 관중이 자신의 아내를 언급하며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확인 결과 그 관중이 안정환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발언을 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 안정환은 벌금 1000만원이라는 징계를 받고 사건은 그냥 그렇게 일단락됐다.
이번 하승진 사건과 당시의 사건도 묘하게 겹친다. 스포츠에서 팬이 목표이자 지향점은 될 수 있지만 '무한 갑'은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갑의 횡포가 우회적으로 농구장에서도 드러난 셈이다.
삼성 측은 해당 관중의 경기장 출입 금지 등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이미 해외 스포츠계에서는 이러한 관중에 대해 다시는 현장에 오지 못하도록 한 경우가 많다.
◇코를 다친 하승진. (사진=K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