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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유종의 미' 앞둔 차두리의 리더십
입력 : 2014-12-29 오전 10:06:13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대한민국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드디어 그 인정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하다."
 
차두리(34·FC서울)는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4 K리그 대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 얼마 남지 않은 선수생활에 대한 정리였다. 그의 손에는 수비수 베스트11 트로피가 들려 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영웅 차범근(61)의 아들 이전에 축구선수 차두리의 성과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가 늘 전파해 온 '긍정의 에너지'가 진솔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두리에게 차범근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닮은 생김새에 똑같은 포지션은 늘 차두리에 앞서 차범근의 모습을 팬들에게 불러왔다. 하지만 차두리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사이에 선수생활 막바지에 이르자 진정한 리더로 거듭났다.
 
◇축구대표팀의 차두리. ⓒNews1
 
◇아버지 포지션 버리며 재도약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차두리는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의 눈에 띄어 스타가 됐다. 대표팀 막내로 월드컵 4강까지 맛본 그는 이후 아버지 차범근이 활동했던 독일로 건너가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프라이부르크 등에서 뛰었다.
 
팬들 사이에서 차두리는 '차미네이터'로 통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빠른 발이 돋보였으며 강력한 몸싸움까지 완벽했다. 공격수로 뛰던 차두리는 독일과 국내에 있는 중장년층 팬들에게 차범근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신세대 팬들에겐 유럽 선수들과 견줘도 체격에서 밀리지 않는 당당함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상이 문제였다. 차두리는 대표팀에서 유독 골과 인연이 없었다. 문전 앞에서 플레이가 투박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심지어 2006 독일월드컵을 이끈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차두리를 최종명단에서 제외했다. 거침없을 것 같던 차두리의 전성기가 멈추는 듯했다.
 
차두리의 선택은 변화였다. 그즈음 차두리는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신했다. 마인츠로 이적한 차두리는 차근차근 수비수로서의 가능성을 살폈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 차범근의 등번호 11번을 과감히 버렸다. 등번호 2번을 단 차두리는 풀백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의 축구 인생이 한 번 더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차두리의 타고난 신체조건은 강력한 수비를 하기에 제격이었다. 게다가 공격수로 뛰며 익힌 감각은 풀백으로써 공격에 가담할 때를 잘 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2010 남아공월드컵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전부터 차두리를 대표팀에 꾸준히 불러 그를 중용했다.
 
이를 보는 축구 팬들은 흥미로웠다. 과거 '야생마' 김주성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신한 적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적인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나온 해결책이었다.
 
그에 반해 '로봇'에 가깝다는 차두리의 변신은 신선했다. 특히 차두리는 당시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수비수 3명을 몸으로 튕겨내 이른바 '3단 몸통박치기'라는 화제의 동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차두리에게 달려든 일본 선수가 튕겨나가자 묘한 감정이 축구팬들의 마음속에 싹텄다.
 
차두리의 변신은 월드컵에서 또 한 번의 성과를 냈다. 그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뛰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에 기여했다.
 
◇FC서울 입단 "팬들 위해 뛰겠다"
 
2013년이 밝자 차두리를 둘러싼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K리그에서 한 번도 뛴 적 없는 그가 33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결과는 FC서울행이었다. 차두리는 FC서울 입단식에서 "전적으로 내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아버지도 몰랐다"며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에 따라 서울 입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입단식에서 나온 차두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뒤셀도르프와 계약이 끝난 뒤 3달 동안 일반인으로 지냈다. 독일에서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다녔다. 하지만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마다 K리그에서 뛰는 차두리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차두리는 "많은 분이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사랑해줬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털어놓으며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K리그에서 태우기로 했다"고 했다. 이왕이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까지 나갈 수 있는 팀으로 고르던 중 서울 이적을 확정했다고 훗날 설명했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와 체력부담이 많은 풀백이란 점 때문에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서울이 수원삼성과의 슈퍼매치를 비롯한 여러 마케팅적 요인을 의식해 차두리를 영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원은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팀이기도 했다.
 
차두리도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마케팅 때문에 나를 영입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다. 공격수에 재도전할 생각은 없지만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국가대표를 꿈꾸는 만큼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국가대표라는 단어가 차두리의 입에서 나올 때만 해도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했다. 기술보다는 힘이 앞선 선수라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평도 나왔다.
 
◇"은퇴 말라"..대다수가 붙잡는 베테랑
 
그로부터 2시즌이 흘렀다. 의구심은 거의 사라졌다. 차두리가 K리그 58경기에 출전해 5도움을 기록하는 동안 그는 서울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차두리의 예상대로 그는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경험했다. 올해는 베스트11 수상과 동시에 K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차두리를 향해 "여전히 전성기", "현역 최고 수준의 체력"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실제 서울의 경기를 바라보면 그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부분에서 얼마나 많이 뛰는지 확인할 수 있다. 왼쪽 풀백 김치우와는 공격에 가담하는 비중부터가 다르다. 차두리를 향한 최용수 감독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는 차두리의 최종명단 발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앞서 3월 그리스와 평가전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두리는 끝내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해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34세의 풀백이 여전히 실력만으로 대표팀에 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차두리가 입증했다. 장시간 비행과 부상 등 여러 이유가 있긴 해도 1살 어린 박지성이 먼저 은퇴한 상황에서 차두리의 행보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두리는 브라질월드컵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리더십을 드러냈다. 그는 대표팀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자 "선배들이 실력이 부족해 대표팀에 도움이 못 됐다.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준 것 같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를 포함해 축구계 지도층이 "내 탓, 네 탓"을 따지고 있을 때였다. 차두리는 밖으로 손가락을 펴지 않고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슴을 먼저 가리켰다. 차두리의 말대로 당시 대표팀에 리더가 없어 쉽게 무너졌다는 말은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이청용(볼턴)의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차두리(왼쪽)와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News1
 
◇슈틸리케호의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
 
지난 10월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자 차두리의 이런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조명 받고 있다. 경기장에서 우수한 플레이와 더불어 운동장 밖에서 나타난 차두리의 친화력 때문이다. 게다가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차두리는 통역 없이 슈틸리케 감독과 소통하는 선수다.
 
특히 차두리는 과거 베테랑 선수들과 다르게 어린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 형성이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에서도 차두리의 이런 모습은 쭉 이어졌다. 이 때문에 세대교체에 한창인 서울은 은퇴를 고민하던 차두리를 최용수 감독까지 나서며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결국 차두리는 지난 27일 서울과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선수생활 막바지에 다다른 차두리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며 컵대회와 정규리그 2번의 우승을 맛봤다. 우승의 절대적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으나 모두 아버지 차범근과 자신이 주로 뛰었던 독일 무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15년은 차두리가 선수생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할 최고의 기회가 남아 있는 해다. 1월9일부터 열리는 호주 아시안컵은 대표팀이 55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대회이자 아버지 차범근도 정상에 서보지 못한 무대다.
 
대표팀 정식 주장은 구자철(마인츠)을 포함해 기성용과 이청용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진정한 리더는 나이와 경험과 성격을 봤을 때 차두리가 꼽힌다.
 
여기에 2015년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은 사실상 차두리의 마지막 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서울은 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갖고 있다. 선수생활 내내 변신을 거듭한 차두리의 마지막 투혼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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