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변하고 있다. 감독방향이 규제 일변도에서 시장자율성을 살리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위법사항이 발생했을 때 선진 금융시장처럼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시장 도약을 위한 금융개혁을 주문하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본격적으로 현장을 뛰면서부터다. 금융권에서는 이같은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사들의 이상한 움직임을 보면 금융당국이 정말 시장중심의 감독변화를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금융지주 회장들은 얼마 전 갑자기 공동 결의를 통해 연봉을 반납해 고용창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고용확대를 권장하는 시점에서 누가 시킨 듯 금융권 회장들이 갑자기 힘을 합쳐 선봉장으로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회장단이 알아서 움직였다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장중심으로 추진할 수 있는 취약업종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만들라고 하면서 2000억원대의 부담스러운 자금 출연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사실상 참여하기 싫은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시장중심의 금융시장을 만드는 꼴이다.
금융당국의 조직도 시장자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소한의 기능을 남겨두고 최대한의 감독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조직 축소와 효율화를 추구해야 된다. 금융당국의 조직이 커질수록 시장과는 멀어지고 더 많은 규제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최근 부서를 신설하는 등 조직 키우고 있다. 현재 금융위 정원은 255명으로 예전에 비해 오히려 비대해졌다. 그럼에도 근무인원은 270명에 달하는 등 덩치를 더 키우기 위한 의지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결국 금융당국이 시장자율을 내세워 금융사의 책임은 무겁게 하지만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권한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하지만 수차례 대형 사건사고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져버린 금융당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독방향이 달라지는 금융당국은 이같은 당연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이제 보여주기식의 현장 행보는 그만두고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시장자율의 감독방향을 보여줘야 할 때다.
고재인 기자 jik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