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노사간 합의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한 뒤 근로자 측이 '합의가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며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할 경우, 사측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주장해 이를 거부할 수 있지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없다면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김 모씨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 36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경영 상황은 기업 내·외부의 여러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게 된다"며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볼 때, 원고들 제소로 피고가 부담할 추가 법정수당이 약 5억원 상당인데 비해 피고 매출액은 매년 5~6조원으로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는 점, 원고들이 요구하는 추가 법정수당 규모는 피고 연매출의 0.1%에 불과한 점, 이는 피고가 매년 지출하는 인건비 1500억원 중 0.3%인 점 등에 비춰보면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김씨 등은 2012년 8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해 실지급된 수당과의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 2심은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진중공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이에 김씨 등이 상고했다.
재판부는 충남의 한 버스회사 운전기사 박모씨가 같은 이유로 추가 지급할 퇴직금 36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