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의 사퇴 이후에도 한국축구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혼란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관심은 벌써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로 옮겨갔다. 언론에서는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축구인은 물론 개그맨 이경규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유명세 경쟁으로 바라본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 한국축구의 운영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축구협회는 감독 선임과 주요 정책 결정 때마다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큰 비판을 받는 일이 반복됐고, 중요한 결정이 어떤 기준으로 내려졌는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책임은 개인에게 집중됐지만, 정작 의사결정 구조를 손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감독이 바뀐다고 같은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팀 성적만으로 한국축구의 수준을 평가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유소년 선수 육성은 학교와 클럽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영되고, 지도자와 심판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기반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여자축구와 장애인축구, 생활축구 역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투자와 지원은 늘 뒤로 밀렸다. 기초가 약한 상태에서 국가대표의 성적만 기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차기 협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적을 위한 단기 처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이어지는 육성 철학을 정립하고, 연령별 대표팀이 같은 축구 철학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일본은 지역축구협회와 학교, 클럽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구조를 통해 선수 저변을 넓혔고, 독일 역시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유소년 개혁으로 경쟁력을 회복했다. 한국도 이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현실에 맞는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협회 운영도 달라져야 한다. 회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감독 선임과 예산 집행,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은 국민과 축구인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또한 축구인뿐 아니라 경영, 행정, 법률, 스포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인물의 영향력이 아니라 제도가 협회를 움직일 수 있다.
좋은 선수였다는 사실이 훌륭한 행정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리더의 자격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협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자세와 조직을 변화시킬 실행력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10년 뒤 한국축구의 모습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필요한 리더다.
이번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단순히 새로운 회장을 뽑는 절차가 아니다. 한국축구가 과거의 관행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신뢰와 투명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사람은 언젠가 바뀌지만 제도는 오래 남는다. 이번 선거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회장의 이름이 아니라 한국축구를 운영하는 방식이며, 그 변화가 앞으로 20년 한국축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