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기 거버넌스 어제

최저임금은 왜 생겼을까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3.7% 오른 금액이다.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월급은 220만 원대 중반이다. 숫자로만 보면 지난해보다 나아졌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월세를 내고, 식비와 교통비, 통신비를 쓰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많지 않다. '이 정도 임금으로 한 달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최저임금은 왜 생겨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최저임금을 당연한 제도로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초기만 해도 노동은 철저히 시장의 논리에 맡겨져 있었다. 공장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일자리는 부족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낮은 임금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은 흔한 일이었고,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비로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시장이 정말 노동자의 삶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최저임금제였다. 세계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의외로 영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1894년의 뉴질랜드였다. 이후 호주와 영국 등 여러 나라가 뒤따랐고,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최저임금은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경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각국 정부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임금의 최저선을 정하는 것은 시장을 억누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노동에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교훈에서 출발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저임금법은 1986년에 제정됐고 1988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우리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열매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에 일깨웠다. 경제가 성장했다면 노동자의 삶도 함께 나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최저임금제는 그 변화의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소상공인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 한쪽만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은 숫자를 정하는 회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과정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논의의 초점이 늘 '얼마를 올릴 것인가'에만 머문다는 것이다. 물론 인상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지금의 최저임금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물가와 월세가 더 빠르게 오르면 최저임금 인상의 의미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영세 자영업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린다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결국 최저임금은 숫자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복지를 강화하며,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제도의 취지가 살아난다.


매년 이맘때면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찬반이 갈린다. 그러나 그 논쟁 속에서 정작 잊기 쉬운 것이 있다. 최저임금은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최소한의 삶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약속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숫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지 않고, 병원비를 망설이지 않으며, 작은 희망 하나쯤은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그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답글 0 댓글 8 공유

내일 08:50 AI가 답글·인용·좋아요 반영해 점수 재판단

댓글 8
열린창문 G · 어제

얼마냐의 문제로 밖에 인식 못하는 자본가와 공익위원들

성하기 G · 7시간 전

최저임금제가 만들어진게 신기하죠

짜고미 G · 21시간 전

지금의 최저임금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너무 속상해진다. 최저임금으로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이 살아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최저 임금의 시작점을 찾아서 지속 가능한 최저 생활 보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짚어 준 고마운 글에 감사한다.

성하기 G · 7시간 전

감사합니다~

전남친 P · 19시간 전

좋은 글이네요. 노동자와 소상공인 중 한쪽만 탓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하기 G · 7시간 전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전남친 P · 7시간 전

맞습니다 진짜요ㅜ

재재파더 G · 6분 전

소상공인 살리는 정책도 정말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