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기 거버넌스 2026.07.17

혁신의 삼성이 사라질 때, 반도체도 흔들린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심상치 않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직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2년 안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부에서는 그 비율이 80%를 넘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보상과 복지를 갖춘 기업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급여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 인재들이 회사의 미래에 확신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산업은 결국 사람이 경쟁하는 산업이다. 사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기술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삼성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조직문화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하고, TSMC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시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대중국 규제도 삼성에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삼성만 겪는 것이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떤 기업은 기회를 만들고, 어떤 기업은 뒤처진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람과 조직이다.


삼성의 성장도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경영철학은 '인재제일'이었다. 그는 기술도, 자본도 결국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선언했던 신경영 역시 사람과 조직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삼성의 경쟁력은 처음부터 공장이나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


그 철학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불확실성을 이유로 머뭇거릴 때, 삼성은 미래 시장을 먼저 선택했다. 그 결과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 시절 삼성을 움직인 것은 촘촘한 관리가 아니라 인재를 믿고 과감하게 권한을 맡기는 문화였다.


하지만 세계 정상에 오른 뒤 삼성은 조금씩 달라졌다. 실패를 줄이는 관리가 혁신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보고는 길어지고 의사결정은 느려졌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도전보다 검증된 선택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체감하게 됐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공정을 1%만 개선해도 수천억 원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아이디어는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자율적인 도전과 치열한 실험에서 나온다. 연구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조직에서는 이런 혁신이 싹트기 어렵다.


AI 시대의 경쟁은 더욱 그렇다. 엔비디아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TSMC는 고객과 함께 기술을 발전시키며, SK하이닉스는 과감한 결단으로 HBM 시장을 선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실수를 하지 않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더 빨리 배우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완벽한 관리보다 빠른 실행과 학습이 더 큰 경쟁력이 된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높은 이직 의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고의 인재는 높은 연봉만으로는 붙잡을 수 없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존중받고, 실패가 다음 도전을 위한 자산이 되는 조직을 선택한다. 인재제일은 우수한 사람을 많이 뽑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떠나지 않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인재가 머무는 회사는 기술이 쌓이고, 기술이 쌓인 회사는 경쟁력을 잃지 않는다.


삼성이 다시 초격차를 회복하려면 생산라인 증설보다 먼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연구개발 조직에 더 큰 자율권을 부여하고, CTO 중심의 기술 의사결정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적인 연구 성과를 평가하고, 실패를 문책이 아니라 혁신의 과정으로 인정하는 인사제도도 필요하다. 공장을 짓는 데는 돈이 들지만, 혁신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는 철학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인재를 관리하면 조직은 안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인재를 믿을 때 혁신은 시작된다. 삼성이 다시 세계 반도체 산업의 기준이 되려면 선택은 분명하다. '관리의 삼성'이 아니라, '인재제일'을 바탕으로 한 '혁신의 삼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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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열린창문 G · 2026.07.17

성과배분과 보상의 체계문제가 걸리다 보니...

성하기 G · 2026.07.17

서초동 사업지원실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게 문제의 출발점. HBM도 사업지원실에서 개발취소를 하는 바람에 개발팀이 하이닉스로 대거 넘어갔음

전남친 P · 2026.07.17

반도체는 결국 기술 경쟁이면서 사람 경쟁인 것 같습니다. 인재가 떠나는 조직이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듯하네요

성하기 G · 2026.07.18

네. 인재제일이 사라지고 관리제일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