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산업투자가 시작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는 약 4,755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국민이 궁금한 것은 4,755조 원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이 거대한 투자가 과연 우리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리고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혜택을 받는 곳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건설업계, 산업단지 주변 상권이다. 물론 산업이 성장하면 경제도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춘다면 메가 프로젝트는 기업의 투자 성과만 남긴 채 끝날 수도 있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공은 공장을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가 아니라, 청년들이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적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투자 규모와 생산량, 수출 실적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자주 놓쳤다. 그 공장을 움직일 사람은 어디에서 키울 것인가. 그리고 청년들은 왜 지역에 남아야 하는가.
용인과 광주의 반도체 생산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반도체 전문인력과 AI·소프트웨어 인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공장은 몇 년이면 완성할 수 있지만 숙련된 엔지니어와 기술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사람을 키우지 못하면 기업은 인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고, 지역에는 공장만 남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대만의 신주과학단지가 세계적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주과학단지는 공장만 집적한 산업단지가 아니었다. 국립양명교통대와 국립칭화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하며 인재를 길러냈고, 청년들이 연구하고 일하며 정착할 수 있는 생활 기반까지 함께 조성했다. 산업 생태계와 생활 생태계를 동시에 키운 것이 대만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광주 팹 역시 단순한 생산시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호남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결혼과 출산, 주거까지 지역에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광주 팹은 하나의 공장이 아니라 호남의 미래를 바꾸는 산업정책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체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호남지역 대학에는 반도체와 AI 관련 학과를 확대하고 기업과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공업고와 마이스터고는 현장 중심 교육을 강화해 대학 진학 외에도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 이미 사회에 나온 청년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운영해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입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만으로는 청년을 붙잡을 수 없다. 안정적인 주거와 편리한 교통,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시,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교육·보육 환경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 남는 것'이 희생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지역은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갖게 된다.
산업 기반을 뒷받침할 전력 문제도 지역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마을 단위 태양광발전협동조합을 활성화하고 아파트 옥상과 공영주차장, 고속도로 유휴부지 등에 태양광 설비를 확대한다면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민들이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지역경제 모델도 만들 수 있다. 산업 발전의 혜택이 기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4,755조 원이라는 투자 규모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메가 프로젝트의 성패는 반도체 생산량보다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꿈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공장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설비는 교체된다. 그러나 지역에 남아 성장한 청년과 인재는 또 다른 산업을 일으키고 지역의 미래를 이어 간다. 대한민국이 이번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반드시 남겨야 할 가장 큰 유산은 거대한 공장이 아니라, 청년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생태계다. 산업 경쟁력의 출발점은 결국 공장이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