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미 거버넌스 어제

《오디세이》, 재미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재미있어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 《메멘토》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교양으로 영화평론 과목을 수강하던 시절, 과제로 《메멘토》의 리뷰를 써야 했다. 당시 영화는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기 전이었고, 자막도 없이 영어로 영화를 봐야 했다. 대사를 온전히 따라가기도 어려운데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다른 과거로 이어지는 역순의 교차 편집 앞에서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은 대단히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더 끌리게 되었다. 장면과 장면이 맞물고, 앞서 보았던 장면의 의미가 뒤집히고, 뒤늦게 드러난 한 정보가 영화 전체를 다르게 보게 이끄러갔다. 놀란 감독의 편집은 당시 몹시도 낯설고도 불편했지만 계속 생각에 빠지게 하고 압도적이었다. 솔직히 줄거리를 다 이해했는지 조차 불확실했지만,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날의 혼란과 감탄은 오래 남았다. 《메멘토》는 그렇게 내 인생영화가 되었다.

가까운 한 친구는 놀란 감독의 최고작으로 《인터스텔라》를 꼽는다. 하지만 솔직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닌데, 아마 우주라는 공간이 일상적인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취향의 차이는 《오디세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극이나 고전 시대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수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장대한 화면을 자랑하는 영화라 해도 그 매력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영화의 재미는 작품의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장이라고까지 평가되는 놀란의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그의 작품은 독특한 이야기 구조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편집과 촬영, 음향, 시간의 배열 등 영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을 밀어붙여 관객을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메멘토》에서 역순의 편집이 관객의 기억을 흔들었다면,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와 시간의 장대한 풍경이 인간의 감정과 만난다. 놀란에게 영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관객이 직접 겪어 보는 감각의 공간이기도 하다.

놀란은 초기작부터 시간의 비선형성과 인간의 집착에 관심을 보여 왔다. 《인셉션》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덩케르크》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과 생존의 긴박감을 다뤘다. 그의 관심은 복잡한 시간 구조를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떤 대가를 감당하는지 묻는 쪽으로 넓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이》는 놀란이 오래 붙들어 온 질문이 신화의 바다로 옮겨간 작품으로 볼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고 수많은 상실과 유혹, 폭력과 시간을 통과한 인간이 가족과 고향, 그리고 전쟁 이전의 자신을 되찾으려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초반 그의 회고 장면들이 좀 길어 긴장감이 떨어지고, 구혼자들과 싸우는 힘 없는 노인이 되어버린 영웅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데,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메멘토》의 레너드가 기억의 파편을 붙들고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면, 오디세우스는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견디며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집요하게 놓치지 않는다. 한 사람은 과거를 잃어버렸기에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과거를 짊어졌기에 돌아가려 한다. 두 인물의 여정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위해 시간을 견디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오디세이》가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단순히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장대한 모험과 압도적인 화면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놀란이 이야기의 기발함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밀어붙여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처음에는 낯설었던 세계에도 조금 다른 눈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메멘토》를 처음 보며 줄거리를 따라가지 못해 당황했던 내가, 오히려 그 낯선 형식에 매료되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매력은 때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나는 데 있지 않다. 관객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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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마토 P · 어제

어우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성하기 G · 어제

인셉션은 지금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봐야겠어요

전문가 P · 14시간 전

봐바야것군여